[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길을 가던 사람이 갑자기 옆에 주차된 자동차 창문에 손을 대자 차창이 디스플레이로 바뀌면서 상대방의 얼굴이 나타난다. 유리판의 진동을 통해 상대방의 목소리가 전달된다. 손바닥에 아예 전화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해 개봉한 공상과학(SF)영화 ‘토탈리콜(2012년 리메이크)’에 등장하는 장면이다. 신기한 볼거리 정도로 짚고 넘길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빠른 미래에 이와 비슷한 기술이 실제로 우리 앞에 다가올 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일본 소니나 국내기업 아큐픽스 등은 사용자가 머리나 눈에 고글 형태로 착용해 영화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HMD(헤드-마운티드-디스플레이)’의 판매를 시작했다. 전투기 파일럿들이 사용하던 기술이 본격적으로 의료·레저·엔터테인먼트 등의 산업에서 응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IT기업 뿐만이 아니라 글로벌 스포츠기업들까지 ‘착용하는 테크놀로지’에 팔을 걷어붙였다. 세계적 스포츠브랜드 나이키는 ‘퓨얼밴드(FuelBand)’란 제품을 선보였다. 손목에 착용하는 방식인 퓨얼밴드는 내부에 3축 가속도계 센서를 장착하고 있으며 착용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일일 칼로리소모 등 운동량을 측정해 주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해 자신의 운동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 준다.
착용하는 컴퓨터는 우리의 삶을 모바일 기기가 바꾼 것보다 더욱 크게 바꿔놓을 것이다. 인체의 미묘한 생리적·정서적 변화를 감지하거나 기존의 모바일 기기나 컴퓨터와 연동해 더욱 풍부한 사용자 경험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또 지금보다 더욱 발전된 음성인식·동작인식 기술이 적용되면서 옷 안주머니에서 지갑이나 휴대폰을 꺼내는 지금의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샤이버그슨 대표는 착용형 장비, ‘웨어러블즈(Wearables)’가 성공하기 위한 조건 몇 가지를 제시했다. 그중 하나는 “사람들의 실제 생활에 기술적으로 들어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혁신적이고 놀라운 기술이라 해도 실생활에서 응용할 여지가 없다면 실패한다. 사람들의 필요와 욕구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기존의 스마트폰 등과 확실히 차별화되는 작고 완결성있는 제품이 되어야 한다”지적이다. 별반 차별성이 없는 애매한 제품은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착용형 장비만이 제공할 수 있는 사용자 경험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다른 하나는 “ 착용자에게 한눈에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시현성, 그리고 누구나 탐낼 뛰어난 패션 아이템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는 컴퓨터’가 전자장비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그 자체로 기존의 의류나 액세서리와 같은 패션 아이템의 성질을 구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상호 연결된 디지털 생활의 중심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채울 수 없는 사용자경험의 영역이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더욱 보기 편한 화면을 위해 스마트폰의 화면이 점점 커지는 추세지만 그만큼 무거워지고 휴대하기에 불편해진다. 자칫하면 분실하기 쉽다는 점도 있다. 시계처럼 손목에 차거나 안경처럼 걸친 장비가 이를 대신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더욱 혁신적이고 편리하게 바뀔 수 있다.
세계 산업계는 이미 발빠르게 새로운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다. 미국의 주요 벤처기업 소셜펀드인 ‘킥스타터’나 ‘인디고고’에는 ‘착용형 컴퓨터’에 대한 새로운 개발 아이디어들이 넘쳐나고 있으며, 심지어 애플도 동참할 것이라는 루머가 나왔다. 애플 제품에 대한 분석으로 유명한 투자은행 파이퍼재프레이의 진 먼스터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착용하는 컴퓨터는 미래의 IT업계 트렌드가 될 것”이라면서 “애플도 내년이나 내후년쯤 지금의 스마트폰을 대체할 새로운 개념의 제품을 제시할 것이며, 시계처럼 손목에 착용하는 형태 역시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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