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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의 10 Voice] 그깟 도너츠에 담긴 자본의 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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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주의 10 Voice] 그깟 도너츠에 담긴 자본의 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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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더킹 투하츠>를 둘러 싼 이른바 ‘도너츠 게이트’ 의혹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원래 <더킹>으로 알려졌던 제목이 <더킹 투하츠>로 바뀐 이유가 정말 던킨 도너츠 때문일까? 혹은 이 도너츠 PPL(간접 광고)이 좀 더 세련되게 등장했다면 시청자의 불만은 없었을까? 그 전에 남북과 왕실을 다루는 이 드라마에 굳이 도너츠가 나와야 하는가와 땅 파서 드라마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깟 도너츠 좀 나오면 어때라는 입장 중 어느 쪽에 손을 들어 줄 수 있을까? <더킹 투하츠>의 제작사 김종학 프로덕션 관계자는 제목에 대한 의혹을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런 루머를 듣고 우리도 웃었다”고 일축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처럼, 정말 억울한 오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 웃을 수 없는 이유는 <더킹 투하츠>의 마케팅을 대행하는 제일기획이 던킨 도너츠의 광고 대행사라는 사실이 의혹을 거둘 수 없게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드라마와 영화 제작에서 2순위가 된 완성도


도너츠 PPL은 <더킹 투하츠>의 진입장벽에 한 층 더 벽을 쌓아 결국 전체적인 완성도를 주저앉혔다.

도너츠 PPL은 <더킹 투하츠>의 진입장벽에 한 층 더 벽을 쌓아 결국 전체적인 완성도를 주저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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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킹 투하츠>는 진입장벽이 높은 드라마다. 우선 소재 자체가 친숙하지 않다. 입헌군주제라는 가상의 설정과 실존하는 현실이지만 우리가 충분히 알지 못 한다는 점에서 가상에 다름없는 북한을 다루기 때문에 <더킹 투하츠>는 시청자의 몰입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더 성실하게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제작진은 이를 빤하지 않게 풀겠다는 강박까지 더해 다소 불친절하고 불균일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물론 장르를 규정지을 수 없고 다음 이야기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이 작품의 특징이 어떤 이들에게는 신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호오의 영역일 수 있고 제작진이 노력했지만 일정 부분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PPL의 경우 포기 혹은 타협했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그리고 그로 인한 불편함과 거부감은 시청자의 몰입을 치명적으로 방해했고 그렇지 않아도 높은 이 드라마의 진입장벽에 한 층 더 벽을 쌓아 결국 완성도를 주저앉혔다. 이처럼 이 사태는 드라마를 둘러 싼 자본의 논리가 어떻게 창작의 영역을 침범해 작품의 완성도를 해치고 창작자의 자존심을 시험하고 시청자를 기만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그래서 더 불편하고 더 웃을 수 없다.
최근 영화계에서 일어난 ‘이명세 감독 해고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이명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 <미스터 K>의 촬영이 중단되었다. 사태의 시작은 현장에서 찍기로 사전에 조율한 ‘현장 촬영 대본’과 실제로 이명세 감독이 찍은 장면이 달라서였다. 감독의 연출과 편집권이 명백히 침해받았다는 입장과 100억이라는 거액의 제작비가 투자된 영화에 당연히 행사할 수 있는 제작사와 투자사의 권리라는 입장 중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100억은 명백히 큰돈이고 최근 대작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한 상황에서 몸을 사리게 되는 것 역시 인정한다. 하지만 다음 날 찍을 장면에 대한 리포트를 투자사에 제출해 검열을 받고 촬영 도중 수시로 가편집본을 확인 당하고, 끝내 자신들의 입맛대로 영화를 찍지 않으면 감독을 바꿀 수도 있다고 공언하는 것이 과연 좋은 영화를 만드는 옳은 방법일까? 작가와 감독이 드라마를 기획하고 대본을 구상하는 단계부터 광고해야 할 특정 상품을 위한 에피소드를 고민하고 노출 수위와 횟수에 따라 책정된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맥락을 무시한 광고를 작품에 집어넣어야 하는 상황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담보할 수 있을까?

최소한의 예의, 최소한의 상도덕이 무너지는 현실


투자사 스스로 합리적이라 믿는 대기업 시스템으로 작업한 영화들의 흥행 실패와 작품성 논란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투자사 스스로 합리적이라 믿는 대기업 시스템으로 작업한 영화들의 흥행 실패와 작품성 논란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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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드라마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이 아니라 우리네 삶을 반영하는 예술이다. 물론 ‘남의 돈으로 하는 예술’이라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자본과 불가분의 관계인 것도 간과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들이 불편한 이유는 최소한의 예의, 최소한의 상도덕이 무너지는 현실을 목도하는 데서 오는 불쾌감 때문이다. “지펠의 남자에서 재하로 돌아갈 시간이네요”라는 내레이터의 멘트에 이승기가 “재하와 항아의 특별 이벤트에 초대하겠다”고 답하는 광고 방송에 뒤이어 시작된 드라마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형형색색의 도너츠가 등장하고 “도너츠는 커피와 함께 따뜻하게 먹어야지”라는 낯 뜨거운 대사를 읊는다. 드라마에 충분히 몰입해 함께 울고 웃고 싶었던 시청자는 당혹스러울 뿐이다. <더킹 투하츠>의 PPL은 촌스러워서 나쁠 뿐 아니라 더 이상 숨어 있지 않겠다, 시청자의 눈치를 보지 않겠다는 자본의 선전 포고 같아서 나쁘다.

열심히 만들고 큰돈을 투자한 작품을 위기에 빠트리는 것은 그깟 도너츠 좀 나온다고 참지 못 하고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가 아니다. 완성도보다 수익을 먼저 생각해 무리하게 자본을 끌어오는 제작사, 과도한 몸값으로 전반적인 제작비 상승에 일조하고 결국 광고 의존도를 높인 스타 배우와 제작진, 그리고 드라마를 창작의 영역이 아니라 광고 노출 횟수와 방식이 최우선 고려 대상인 매체로 보는 광고주 자신들이다. 이는 스스로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는 대기업 시스템으로 작업한 영화 <7광구>와 <마이웨이>의 흥행 실패와 작품성 논란에서 반성을 하기는커녕 자신들의 과오와 그로 인한 실패를 뒤집어 쓸 애꿎은 희생양을 찾고, 창작자가 아닌 꼭두각시로서의 감독을 고르는 투자사 역시 마찬가지다. 돈에는 얼굴이 없다고 한다. 즉 자본은 양심이 없다. 결국 이를 운용하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자기 얼굴에 침 뱉기인 작품의 질 저하와 흥행 부진이라는 악순환의 부메랑을 던지는 몰염치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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