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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축구세상]여자축구, 이렇게 보면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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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비르기트 프린츠, 마르타, 미아 햄.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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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오른 상태로 물러나기”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닌가보다. 세계 여자 축구 역사를 통틀어 세 손가락에 들 법한 '전설 중의 전설' 비르기트 프린츠(독일)의 은퇴를 보며 든 생각이다.

FIFA 올해의 선수 3년 연속 수상, 두 차례의 여자 월드컵 우승, 다섯 차례 유럽선수권 우승, 여자 월드컵 역대 최다 득점 타이(브라질의 마르타와 더불어 14골), 올림픽 여자 축구 역대 최다 득점 타이(브라질의 크리스티아네와 더불어 10골), 분데스리가 득점왕 4회, 독일 국가대표 통산 214회 출전 128골.
이 모든 것이 축구 선수 비르기트 프린츠가 이뤄낸 업적들이다. 이것들 가운데에는 이미 깨진 기록(예를 들어 마르타의 5년 연속 올해의 선수), 얼마 후 깨질 기록도 있겠으나 적어도 한동안 다른 이들이 범접키 어려운 기록들도 있다.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남긴 ‘여걸’ 프린츠가 바로 얼마 전 축구화를 벗었다. 그런데 프린츠의 마지막은 그녀의 위대한 커리어를 고려할 때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참여한 노장 프린츠는 조별리그 첫 경기 캐나다 전과 두 번째 나이지리아 전에 선발로 출전했지만 두 경기 모두 60분을 채우지 못하고 교체됐다. 후배 선수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득점도 없었다.

이 때 독일 감독 실비아 나이트(프린츠의 어린 시절 대표팀 선배)는 냉정한 결단을 내렸는데, 프랑스 전부터 프린츠의 자리를 다른 베테랑인 잉카 그링스로 대체해 버린 것. 사실 프린츠는 올해 들어 A매치 골이 전혀 없는 상태였기에 나이트의 결단에는 분명 합리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독일은 8강에서 다소간 예상 밖으로 일본에 패퇴했고, 결국 나이지리아 전은 전설적인 스트라이커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프린츠의 이러한 퇴장은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그라운드를 떠난 여자 축구의 ‘원조 전설’ 미아 햄(미국)의 은퇴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프린츠가 지금까지의 여자 축구사에서 가장 위협적인 센터포워드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프린츠는 압도적인 파워를 지니고 있었지만 결코 그것 하나에만 의존하는 선수가 아니었다. 체격만을 앞세울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안정적인 기본기와 드리블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수비수들로서는 여간해선 막기 어려운 공격수였다. ‘헤딩 머신’의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발도 잘 쓰면서 민첩한 스타일인 독일 남자 축구의 미로슬라프 클로제를 떠올리면 알기 쉽다.

말이 나온 김에, 여자 축구를 더욱 흥미롭게 관전할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방법이란 다름 아닌 우리에게 보다 친숙한 남자 선수들과의 스타일 비교를 통해 여자 축구를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자 축구의 역대 최고 테크니션이라 할 만한 마르타는 글자 그대로 ‘여자 펠레’라 불리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1958년의 ‘센세이션’ 펠레와 마찬가지로, 마르타는 이전의 다른 여자 선수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테크닉들을 국제무대를 통해 선보여 왔다. 국적도 펠레와 같은 브라질이니 안성맞춤이다.

세계 여자 축구 전체를 한 단계 이상 끌어올린 공로자 미아 햄은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프랑스의 티에리 앙리를 연상케 하는 부분들이 있다. 햄은 빠른 발과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데 일가견이 있었으며 동료를 위한 어시스트, 감아차기에 의한 득점 등 여러 가지 모습들이 앙리에 가까웠다는 생각이다. 1999년 월드컵에서 햄과 일전을 벌이기도 했던 브라질의 시시는 남자 축구 히바우두의 ‘판박이’라 할 만하다. 실상 그녀의 왼발 프리킥의 정확도는 히바우두가 울고 갈 수준이었다. 한편, 한나 융베리와 함께 오랜 기간 스웨덴의 공격 라인을 이끌었던 빅토리아 스벤손의 플레이는 ‘처진 스트라이커’의 대명사 데니스 베르캄프를 적잖이 닮았다.

축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역할들 중 하나인 ‘플레이메이커’ 계열의 여자 선수들도 존재해왔다. 예를 들어 독일의 10번이었던 레나테 링고어는 자칫 단조로워질 수 있는 전차군단의 공격에 소금 같은 창조성을 불어넣는 선수였다. 링고어는 독일 남자 축구의 피에르 리트바르스키, 안드레아스 뮐러와 같은 선수들을 떠올리게 한다. 노르웨이 플레이메이커 솔베이그 굴브란슨은 후방에서 부드럽게 볼을 다루면서 절묘한 롱패스를 뿌려대는 스타일이었는데, 여러 가지 모습이 언제나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을 연상시키곤 했다. 다섯 번째 월드컵 출전에 마침내 큰일을 해낸 일본의 사와 호마레 또한 여자 축구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플레이메이커. 스루패스 등을 통한 어시스트에 능하면서도 스트라이커 뺨치게 득점에 가담한다는 측면에서 사와의 플레이는 일정 부분 미셸 플라티니와 닮은 데가 있다.

이제 얼마 후면 우리 여자 축구 대표팀의 런던 올림픽 최종 예선이 펼쳐진다. 박희영, 차연희, 전가을, 조소현, 이은미, 지소연 등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 스타일을 유심히 지켜보면서 우리의 올림픽 본선 행을 응원해 봄이 어떠할까.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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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 anju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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