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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리더십]럭비공 人事? 이길 수 있는 선수 투입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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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4 예측불허 용인술(상)

가신은 두지않는다···언제라도 사람교체 가능
벌떼야구로 이긴다···김성근 SK감독과 닮은꼴
긴장감속 창의력 나온다··이유있는 잦은 인사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승리'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집착의 중심은 사람이다. 모든 일의 결과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결정된다는 신념에서다. 그래서 정 회장은 승리할 수 있는 인재를 늘 찾고 발굴한다. 그리고 그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현대차의 성공 질주는 정 회장의 비범한 용인술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우유철 현대제철 사장(왼쪽에서 세번째)의 안내를 받으며 지난 2009년 12월 26일 당진공장 일관제철소 건설현장을 찾아 제1고로를 최종 점검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우유철 현대제철 사장(왼쪽에서 세번째)의 안내를 받으며 지난 2009년 12월 26일 당진공장 일관제철소 건설현장을 찾아 제1고로를 최종 점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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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 매일 오전 7시면 현대제철 당진 사무소 대회의장에는 '회의중'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우유철 사장이 진행하는 임원회의다. 고로를 건설 중일 때에는 오전 6시 즈음이면 우 사장은 어김없이 회의실 의자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우 사장의 주 전공은 항공우주공학이다. 샛별위성 개발의 숨은 주역으로 통한다. 지난 2004년 당시 이사였던 그는 현대모비스 마북리 연구소를 방문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에게 브리핑을 했는데, 정 회장의 질문에 막힘없이 정답을 내놨다고 한다. 만족한 정 회장은 곧바로 우 이사를 상무로 승진시켰고, 한 달 만에 현대제철의 전신인 INI스틸로 옮기며 전무로, 이어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1년간 무려 세 단계를 승진했는데, 당연히 그룹 내에서도 화제였다.

한보철강을 인수한 정 회장은 숙원이었던 고로 건설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해줄 적임자로 그와 뒤 이어 회사에 합류한 박승하 사장(현 부회장)을 낙점했다. 365일 공사 현장을 지키며 공장을 진두지휘한 그는 1고로 완공을 눈앞에 둔 2009년 사장 자리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1ㆍ2고로 연속 화입ㆍ가동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6년 전 브리핑만으로 정 회장은 우 사장의 능력을 간파했던 것이다.

◆믿는다, 하지만 가신은 안된다= 현대차그룹에는 우 사장처럼 초고속 승진을 거친 이들도 많지만 한 순간에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올해만 해도 지난 3월 정기 인사가 끝난 뒤 지난해 국내외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둔 서영종 기아자동차 사장이 경질되고 이삼웅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대관 업무를 맡고 있던 정진행 부사장은 현대차그룹이 동반성장 협약을 맺은 다음날 바로 사장이 됐다. '파워트레인'으로 현대차 품질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 받았던 이현순 현대차 부회장도 갑자기 자리에서 물러났고, 이 부회장의 뒤를 이은 양웅철 사장은 20일 뒤 곧바로 부회장이 됐다.

외부에서는 현대차그룹 전문경영인의 재임기간이 재계에서 가장 짧다며, '파리목숨' 신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서는 이런 소문도 회자되고 있다.

정 회장이 한 계열사 CEO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았는데, 내용이 전혀 마음에 안 들어 그 자리에서 사직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사업장을 돌던 중 정 회장이 임원들에게 "OOO 사장 어디있어?"라고 물어보며 업무를 지시했다. 이미 퇴사 처리를 했던 그룹 인사 담당자는 부랴부랴 그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조용히 복직을 시켰다.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는 정 회장의 인사 스타일을 보여준다고 입을 모은다. 평가는 부정적인 인식이 더 크다.

조금만 더 깊게 들여다보자. 전문경영인, 직원에 대한 정 회장의 시각은 아버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시절부터 고착돼 온 현대그룹의 전통에서 계승됐다.

정 명예회장의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은 생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스타 전문 경영인으로 세간에 화제를 뿌렸던 이명박 전 현대건설 회장(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한국의 큰 기업이 몇 개나 되느냐"고 반문했고, 2만개 정도 된다는 답을 듣자 "그러면 이 군은 2만1번째 경영자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은 정 회장에게도 스며들었다. 다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았다.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서비스(현 현대 모비스), 현대정공(현 현대로템) 등 주력사업인 자동차와 거리가 먼 계열사에서 경영역량을 키워왔다. 아버지의 눈과 입에만 시선을 맞추는 가신들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며 이들이 만든 폐단을 여러 번 목격했고, 직접 뒤통수도 맞아봤다. 이런 경험 때문에 정 회장은 믿는 사람은 있으나 가신을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언제라도 사람을 등용하거나 바꿀 수 있다는 점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정 회장과 김성근 감독= 프로야구에는 '야신'이라 불리는 김성근 SK와이번스 감독이 있다. 지난 2007년 SK와이번스 감독을 맡으며 지난해까지 세 번의 한국시리즈 우승, 한 번의 준우승을 일궈낸 김 감독의 야구 스타일을 '벌떼야구'라고 부른다. 한 경기에 수많은 투수와 타자를 등판시키기 때문이다. 무너진 선발진에도 불구하고 19연승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선발ㆍ중간ㆍ마무리를 가리지 않는 상황에 맞춘 선수기용 덕분이었다.

깜짝 인사와 벌떼야구. 용인술에 있어 정 회장과 김 감독은 닮은 점이 많다. 먼저, 많은 사람을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구성원을 잘 알았기에 가능하다. 정 회장은 양재동 현대차 본사 집무실과 한남동 자택에 똑같은 내용의 인사파일을 보관해 두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면 늘 인사파일을 보며 사람을 파악한다. 김 감독은 일본식 관리 야구에 능한데, 선수에 대한 일거수 일투족을 늘 머릿속에 넣고 다닌다. 완벽하게 파악했기 때문에 상황이 닥치면 곧바로 대체요원을 찾아내 교체한다. 당사자는 갑작스럽기 때문에 당황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을 바꾸는 데에는 이유가 있고, 이는 심사숙고 끝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말 현대차 인도법인장으로 있던 임흥수 대표가 현대 메티아 사장으로 발령났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글로벌 현지 경영의 시발점이었기에 자부심이 큰 자리다. 연 매출이 6조원에 달했던 이곳을 총괄하다가 3000억원대의 계열사로 간다니, 임 대표는 "그 때는 마음도 심난했고, 정 회장에 대해 조금 섭섭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듬해 초 임 대표는 현대위아와 그 계열사인 현대메티아ㆍ현대위스코까지 대표를 겸직하게 됐다. 현대위아는 정 회장이 애정을 갖고 추진한 공작기계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데다가 부품 계열사중 유일하게 자동차 엔진을 생산하고 있는 중요 업체다. 더군다나 이 회사는 한 해 뒤 증시 상장을 앞두고 있었다. 임 대표는 "그제서야 '아! 내가 회장님 의중을 못 읽었구나'라고 머리를 쳤다"고 말했다. 임 대표는 회사 상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지금도 매월 정 회장에게 공작기계 영업 실적을 직접 보고하고 있다.

◆"승리는 긴장의 성취물"= 정 회장이 지향하는 정점은 '승리'다. 승리를 못하는 경기는 어떤 변명도 필요 없으며 리더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이는 김 감독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야구가 도대체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리더는 결과로 말해야 한다. 어떻게든 정상에 올려놓은 뒤 선수들의 신뢰를 얻어야 하는 위치다"라는 그의 말은 정 회장의 마음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승리를 위해 정 회장은 언제라도 '이길 수 있는' 인력을 투입한다. 이러한 유연적인 인사 체제는 조직원들에게 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긴장을 하면 스스로 방법을 만들려고 하고 더 잘하기 위해 원칙을 뛰어넘는 창의적 방안을 도출한다. 고바야시 전 후지쓰 회장이 "안락한 곳에서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는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지혜라는 것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어 살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말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현대차가 기아차를 인수한 초창기 때 일이다. 한 지방도시가 택시 증차계획을 마련하자 입찰을 따내기 위해 국내 전 자동차 업체 담당자가 참석해 사양과 가격을 조율했다. 이 자리에 기아차는 이사급 임원을 보냈는데, 현대차는 대리급이 나왔다. 현대차에서 입찰가를 낮추려는 눈치가 보여도 기아차 임원은 이를 맞받아 가격을 낮출 권한이 없었다. 회사안을 변경하려면 회장의 허락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대차는 경쟁사에서 낮은 가격을 써낼 것으로 판단되면 대리급 직원이 자기 판단에 따라 그 자리에서 더 낮은 가격을 써냈다. 더구나 벨트, 스파크 플러그 같은 소모품은 원래 차량가격에 포함되지 않는데도 현대 직원들은 이런 부품까지 얼마씩 주겠다며 현장에서 이면계약을 하기도 했다.

기아차로선 꿈도 못 꿀 일 이었지만 현대차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말단 직원에게도 전권을 부여했다. 저돌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해당 직원은 극도의 긴장감을 갖고 훈련과 고민 끝에 스스로 경쟁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았고, 이를 행동으로 실천한 것이다.

'럭비공', '파격', '예측불허'라는 부정적인 수식어만 붙는 정 회장의 용인술이 정말 잘못된 것일까? 적어도 현대차그룹이 지금까지 이뤄낸 실적을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MK리더십 특별 취재팀(이정일·채명석·최일권·김혜원·조슬기나 기자)
MK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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