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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박준태, 노력으로 부활한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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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박준태, 노력으로 부활한 '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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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이승렬, 김보경, 홍정호, 오재석, 이범영. 이제는 한국 축구의 미래가 된 이름들이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들에겐 결코 '최고'란 이름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 시절 가장 뛰어난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하나같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바로 박준태(인천)였다.

박준태는 중고교 시절 가장 주목받는 유망주였다. 빠른 스피드와 수비수 한 두 명쯤은 거뜬히 제쳐버리는 개인기, 탁월한 득점감각까지. 모두가 그를 보며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떠올릴 정도였다. 그가 뛰었던 원삼중과 신갈고는 참가하는 대회마다 우승을 차지했고, 득점왕과 MVP도 늘 그의 몫이었다. 고교 2학년 때 시절 축구 명문 고려대 입학이 결정될 정도였다. 각급 대표팀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박준태는 실패를 모르는 이름 그 자체였다.
실패와 좌절은 한순간에 찾아왔다. 대학 입학 즈음 발목과 무릎을 차례로 다치며 1년여를 고스란히 날렸다. 고교 1학년 시절 172cm에서 멈춰버린 신장도 성인무대에선 부담으로 다가왔다. 대학을 중퇴하고 K리그 울산현대에 입단했지만 동기생들이 대표팀과 프로리그에서 맹활약할 때 그는 2군을 전전했다. 패배감은 순식간에 천재를 범재로 만들어버렸다.

반전의 계기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축구를 처음 제대로 시작하게 해준 허정무 인천 감독과의 재회였다. 중학시절부터 그를 눈여겨 봐왔던 허 감독은 울산에서 방황하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결국 올 시즌을 앞두고 극적으로 인천에 합류했고 조금씩 출전기회를 얻어갔다.

그리고 4월 17일. 성남 일화와의 홈 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해 결승골까지 터뜨리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올 시즌 인천의 첫 승을 견인하는 득점포이자 K리그 데뷔 3년 만의 마수걸이 골. 자신감을 되찾은 천재는 예전의 위용을 되찾았다. 정규리그 9경기에서 3골 1도움을 기록했고, 7라운드 MVP에 오르는 등 3주 연속 K리그 베스트 11에도 선정됐다. 허 감독 역시 박준태의 부활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최근에는 올림픽대표팀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3년 만에 태극 마크를 달았다.
떠오르는 유망주답지 않게 박준태는 의젓했다. 일찌감치 모진 풍파를 경험했기에 이제 겨우 잎을 틔운 묘목임에도 탄탄한 뿌리를 갖고 있었다. 쓸모없는 자만감도 없었다. 이 남자.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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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모든 게 완벽했다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처음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언제였나

박준태(이하 박) 서초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때엔 주말에만 축구를 했는데 스카우트분이 저를 보고 축구선수 해 볼 생각 없느냐고 물어보셨다. 나도 그랬지만 아버지도 워낙 축구를 좋아하셨다. 다만 어머니가 반대를 하셨다. 성격이 활발하긴 해도 꼼꼼한 거 좋아하는 성격이라 안 시키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셨는데, 내가 너무 하고 싶어하니까 결국 포기하셨다(웃음) 이후 삼전 초등학교로 전학해 정식으로 축구를 시작하게 됐다.

스투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두각을 드러냈다고 들었다.

허정무 감독님이 총감독을 맡으셨던 용인FC(원삼중)로 진학했다. 당시에도 또래들보다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뽀록뽀록'대며 잘 뛰어다녔다. (웃음) 각급 청소년 대표도 빠짐없이 들어갔다. 자만했다고 할 정도였다. TV로 잘하는 선수를 봐도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린 마음이었겠지만 그 정도로 자신감이 많았단 뜻이다.

스투 허정무 감독을 처음 봤을 땐 어땠는가

2001년 허정무 감독과 용인FC 테스트 기간 때 처음 뵀었다. 테스트이기도 하고 감독님도 보시고 해서 긴장하고 열심히 했는데 어찌하다 보니 1등을 했다. 곧바로 감독님이 나를 부르셔서 호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여러 말씀을 해주시는데 첫인상이 굉장히 좋으셨다. 워낙 인상이 좋으신 분이기도 했고.

스투 동기인 이승렬(FC서울), 김보경(세레소 오사카) 등 동기들을 제치고 늘 중·고교 랭킹 1위로 꼽혔다.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로 잘했는가

용인FC 소속이어서 원삼중학교에서 신갈고등학교로 진학했는데 그 땐 대회 나가면 거의 대부분 득점왕도 하고, MVP(최우수선수)도 차지했다. 친구들은 보통 고3 때 어느 대학에 가고 싶다, 프로팀에 가고 싶다 걱정이 많았는데 나는 이미 고2 때 이미 고려대학교 진학이 결정됐었다. 탄탄대로였다. 그때까지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성인이 되면 곧 좋은 선수가 될 거란 믿음으로 충만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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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망주를 가로막은 슬럼프의 시작

스투 그러다 슬럼프가 찾아왔다

사실 고 3 때 대회 당시 후반전에만 뛰었다. 그나마도 이기고 있으면 잘못 들어갔고 비기거나 질 때만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투입됐다. 아마 다른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하려면 경기를 뛰어야 하는데, 신갈고가 워낙 강팀이라 나 없이도 성적은 나왔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선 계속 경기를 뛰어야 몸 상태가 유지가 되는데 그렇질 못했다.

스투 조기에 진로가 결정된 것이 독이 된 셈이다.

그렇다. 이후 U-19(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에 들어가 베트남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했는데, 괌과의 첫 경기를 하루 앞두고 발목을 다쳤다. 결국 수술을 받아 한 경기도 못 뛰었다. 그 때문에 고려대도 6월에나 들어갔는데 이번엔 허벅지가 파열돼서 또 한 달을 쉬었다. 입학한 뒤 대회를 하나 치르고 프로행을 결심하고 자퇴했다. 그리고 입단 전까지 또 집에서 쉬었다. 고3 말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계속 제대로 뛰질 못한 셈이다. 그때부터 하락세를 맞이했다.

스투 어쨌든 재능은 탁월했기에 2009년 울산 현대에 입단했지만 기회를 잘 잡지 못했다.

당시 김정남 감독님이 드래프트에서 신인을 뽑으셨는데 입단하자마자 김호곤 감독님으로 바뀌었다. 감독님으로서도 잘 모르는 신인 선수들이지 않았겠나. 1순위로 들어왔던 김신욱 형조차도 동계훈련을 못 가고 2군에 갔다. 신욱이형과 가장 친한 형동생 사이였는데, 형이 나랑 성격이 완전 반대다. 신욱이형은 굉장히 성실한 스타일이지만 그때 난 낙천적이었고 어렸을 때부터 좋은 위치에만 있었다 보니 독한 면이 부족했다. 나를 경기에 안 뛰게 하고 2군에 있으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남 탓을 하곤 했다.

스투 그럼 아무래도 김신욱의 영향을 좀 받았겠다

2군에서 함께 지낼 때, 신욱이형은 운동 나갈 때마다 항상 나를 데리고 나갔다. 또 그땐 신욱이형이 수비수여서 같이 1:1도 하고 이런저런 훈련을 같이했다. 거기다가 신욱이형이랑 같이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나도 사람이 바뀌었다.(웃음)

스투 그렇게 늘 동반자였는데 김신욱이 먼저 1군에 올라가고 대표팀에도 뽑혔을 땐 좀 속상한 부분도 있었을 텐데

왜 아니겠는가. 처음에는 신욱이형이 먼저 1군에 올라가서 후반전 10분을 먼저 뛰었다. 그게 그렇게 부럽더라(웃음) 그 다음엔 내가 1군에 올라가고 신욱이형이 2군에 내려갔고, 이후엔 같이 1군에서 투톱으로 뛰기도 했다. 하지만 신욱이형은 계속 게임을 뛰면서 골까지 넣었던 반면 나는 나 자신을 잘 보여주지 못했다.

스투 그리고 한동안 부진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결국 입단 2년차였던 지난해엔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심지어 2군 게임에서조차 잘 뛰지 못했다. 한 마디로 바닥을 쳤다. 그 땐 '내가 왜 2군 경기도 못 뛸까'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다. 경기에 못 나가면 내가 부족한 게 뭔지 되돌아보고 내 장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냥 기분만 상한 채 운동도 제대로 안 하고 허송세월을 했다. 지금 와서 정말 많이 후회되는 부분이다.

스투 '가장 완벽한 바닥'이라고 느꼈을 때는 언제였나

내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학창시절부터 나를 존경해주는 후배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애들이 나한테는 얘기 못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준태형 축구 그만뒀냐'고 물어봤다더라.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야…이제 내가 안 보이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웃음) 그때부터 오기가 생겼다.

스투 그러고 보니 작년 남아공월드컵을 보면서도 기분이 묘했겠다. 당시 대표팀에 학창 시절 은사였던 허정무 감독부터 고교시절 동료였던 이승렬, 김보경이 포함되어 있었으니.

어휴. 당연하다. 승렬이나 보경이 모두 월드컵에 갔는데 난 프로팀 2군 게임에도 못 뛰고 있었다. 당장 내가 자신감이 전혀 없었다. 그 땐 '내가 축구를 잘 못하나'란 생각도 처음 들었다. 내가 너무 못하니까 부럽단 생각조차 안들더라.

[사진=박준태, 인천유나이티드 제공]

[사진=박준태, 인천유나이티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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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에서 다시 만난 스승, 그리고 부활의 날개짓

스투 결국 2년 만에 울산을 떠나 허 감독이 있는 인천으로 오게 됐다. 그래도 처음엔 적응이 어려웠을 법도 한데.

원래 허 감독님과 연락은 자주 했다. 감독님이 워낙 나를 좋게 봐주셨는데 슬럼프에 빠져있는 모습이 안타까우셨나 보다. 지난 시즌 끝나고 인천으로 나를 데려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해주셨다. 사실 이번 시즌 개막 직전까지도 인천 이적이 결정되지 않았다. 울산에선 나를 동계훈련도 데려가지 않았지만 다른 팀으로 놔주려 하지도 않았다. 동계훈련에 포함되지 못한 선수들은 휴가를 받았는데, 나는 쉬지 않고 악착같이 운동했다. 그때가 축구를 시작한 이래 가장 스스로 운동을 열심히 하고 근성을 발휘했던 시기인 것 같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여기 와서 적응이 좀 늦었을 것이다.

스투 애정이 많았던 만큼 허 감독이 특별한 조언도 해줬을 것 같다.

2월 시즌 직전에 인천에 합류해 연세대를 상대로 연습게임을 했다. 당시 워낙 게임을 뛰질 못해 실전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 경기가 끝난 뒤 감독님이 단번에 무엇이 문제인지 지적해주시고, 무엇을 더 해야 할지를 결정해주셨다. 특히 자신감을 키워주셨다. 내가 실수를 하거나 볼을 뺏기더라도 자신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해 주셨다. 더불어 내가 잘하는 점은 더 강하게 칭찬해주시고…덕분에 동기부여가 됐었다.

스투 늘 작은 키를 지적받았는데 공교롭게도 데뷔골은 헤딩으로 넣었다. 더군다나 그 골 덕분에 인천이 올 시즌 첫 승을 올렸고, 이후 상승세를 이어갔다.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골이었을 텐데.

시즌 초반 제주전과 대전전을 뛰었는데 골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내 역할은 주로 후반에 투입되는 조커였고 그만큼 공격포인트를 올려야 했다. 특히 성남전까지 우리 팀이 올 시즌 승리가 없었다. 다른 건 못해도 공격포인트는 하나 꼭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역습상황에서 내가 오른쪽 측면의 재호형에게 패스해준 뒤 안쪽으로 파고들었는데 그 순간 볼이 내 앞쪽으로 올 것 같았다. 그런데 재호형이 크로스를 매우 잘 올려줬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몸을 날렸다(웃음) 골을 넣는 순간 내가 이렇게 될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이 필름처럼 눈앞에서 지나가더라. 감사하단 생각만 들었다. 신욱이형도 그날 전화가 와서 축하한다고 얘기해줬다.

스투 이후 주간 베스트 11에 주간 MVP까지 차지하며 맹활약을 펼쳤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어떨 땐 지고 있는 상황에 내가 들어갔는데 갑자기 나머지 10명 모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잘하더라(웃음). 그래서 15분 만에 역전도 하고. 나 역시 공격포인트를 계속 올리고, 승리도 하면서 자신감을 더 받게 됐다.

스투 인천에 친한 동료도 있나

신갈고 동창인 (조)범석이와 형제 같은 사이다. 범석이는 나보다도 더 힘든 시간을 견뎌낸 친구다. 다른 팀에서 뛸 때도 거의 매일같이 전화하고, 기쁠 때나 힘들 때나 함께했다. 내가 울산에서 너무 힘들 때 인천으로 오라고 얘기해준 친구다. 처음에 이적 협상이 잘되지 않았을 때 나보다도 범석이가 더 실망하더라. 나중에 인천행이 결정됐을 때 바로 전화거라 대뜸 '기다려라' 했는데, 범석이가 그런 거로 장난치지 말라고 하더라.(웃음)

스투 이적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겠다

그렇다기보다는 허 감독님께 정말 감사했다. 경기할 때나 훈련할 때 컨디션이 좋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도 감독님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주셨다는 생각에 너무 감사하다 보니 조금만 못해도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웃음) 그래서인지 하루하루 더 열심히 하게 됐다. 감독님이 제2의 아버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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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찾은 태극마크

스투 그리고 최근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에 뽑혔다. 얼마만의 대표팀인가.

3년 만이었다. 그 때도 홍명보감독님이 U-20(20세 이하) 대표팀에 뽑아주셨는데, 그때 워낙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때라 제대로 뛰지도 못했고 부상도 있어서 결국 U-20 월드컵에는 못 나갔었다. 솔직히 말하면 U-20 월드컵 때 승렬이, 보경이, (구)자철이형, (홍)정호 등 함께 뛰던 선수들이 8강까지 오르니까 배가 많이 아팠다. (웃음)

스투 그만큼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 지난 1일 오만과의 평가전에 나서질 못했다. 아쉽지 않았나

공교롭게도 그때 허벅지 부상을 당해서 못 뛰었다. 홍명보 감독님한테도 너무 죄송했다. 첫날 운동하고 허벅지가 갑자기 안 좋았다.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였고, 여기서 모든 걸 보여주겠다는 각오였는데… 사실 참고 뛸 정도는 됐는데 홍 감독님이 무리해서 뛸 필요 없다며 만류하셨다. 동시에 너무 속상해 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시기도 했다.

스투 결국 이번 요르단과의 2012 런던올림픽 2차 예선을 앞두고 대표팀에 재발탁됐다.

대표팀에 다시 들어갈지는 전혀 예상 못 했다. 오만전에서 다치는 바람에 보여준 게 없기 때문이었다. 내년 올림픽까지 시간은 많이 남아있으니 소속팀에서 열심히 하며 길게 보자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뽑히게 돼 정말 놀랬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최고에서 최하로 떨어지며 자존심이 더 상했다. 그걸 회복하기 위해서 더 노력을 하고 연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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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 닮고 싶은 만큼 그를 연구했다

스투 신장이 작으면서 폭발적인 스피드를 갖추고 킥력도 좋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선 리오넬 메시와 닮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 원래 가장 좋아하는 게 메시였나.

아니다. 원래 고3 때까지는 티에리 앙리를 제일 좋아했다. 당시 메시는 바르셀로나에서 막 데뷔해 호나우지뉴랑 뛰던 시절이었는데, 그때도 친구들이 나를 보고 항상 메시같다고 얘기해줬다. 난 그때 소위 잘 나갔던 녀석이라(웃음) 메시보다 앙리가 좋다고 했다. 이후 내가 성인이 되면서 메시도 엄청나게 성장했고, 경기에서 뛰는 모습을 보며 늘 감탄하곤 했다. 그리고 저 이상의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다. 지금은 메시가 나의 롤모델이다. 팬들이 메시라고 불러주시면 울산 시절엔 마냥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 선수만큼 더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뿐이다.

스투 막연한 롤 모델로서가 아니라, 특별히 메시의 어떤 부분을 연구했고 배우고 싶은가

메시를 자세히 보면 (박)지성 선배 같이 활발하게 이쪽저쪽 움직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어떨 때 보면 여기서도 보이고 저기서도 보인다. 패스 툭툭 치고 조용히 다니다가 찬스를 잡았을 땐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와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골을 넣는다. 다른 선수들보다 체력을 덜 소모하면서도 확실하게 결정을 짓는 영리한 축구를 구사하더라. 메시가 후반에 특히 강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스투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축구 스타일도 바르셀로나?

11명이 같은 생각과 한마음으로 똑같이 움직이는 유기적인 축구를 좋아한다. 신갈고 시절에 그런 축구를 했었다. 골키퍼 (이)범영이부터 최전방 승렬이까지.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함께 생활했기에 서로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 정말 재밌게 축구 하던 시절이다. 그 땐 정말 경기에 나서기 전에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11명 모두 평소처럼 축구를 즐기려 했다. 우리가 중학교 시절 허 감독님이 맞춰준 팀인데 그대로 모두 잘 성장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바르셀로나랑 비슷하다. 바르셀로나도 유소년 시절부터 함께 생활하며 성장한 선수들이 모이는 팀이니까. 신갈고 시절 친구들이랑 같이 축구하고 싶다(웃음)

스투 반면 지금 인천의 전술은 바르셀로나와 거리가 있다. 물론 시민구단으로서 재정의 어려움과 전력 보강의 한계 때문이지만, 가끔은 답답하지 않나

솔직하게 얘기해 답답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웃음) 내 노트북에는 바르셀로나의 지난 시즌 모든 경기가 저장되어있는데, 쉴 때마다 항상 그걸 보는데 '고등학교 때는 우리도 저렇게 축구를 했는데 지금은 왜 안될까'란 생각을 가끔은 한다. 하지만 선수도 이런저런 스타일이 있듯이 팀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저것도 잘하는 선수가 돼야지, 반쪽짜리 선수가 되고 싶진 않다. 절충하는 방법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메시를 롤모델를 잡고 있고 우리 팀은 수비를 펼치다 역습으로 공격하는 스타일이다. 바르셀로나 역습 잘 하지 않나. 내가 그런 모습을 경기에서 재현해 내면 된다.

스투 얘기를 듣다 보니 운동할 때도 쉴 때도 오직 축구만 생각하는 것 같다

원래 노는 걸 되게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그렇다고 나쁘게 노는 게 아니라 노래방 가고, 볼링장 가고, 당구치면서 친구들이랑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특히 어린 시절 잘 나갈 때는 진짜 편하게 쉬었다. 한번은 고등학교 시절에 보경이가 '넌 쉴 때 뭐 하냐'고 묻더라. 그래서 난 축구선수로서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푹 쉰다고 얘기해줬다. (웃음) 하지만 이젠 그렇게 못한다. 그리고 사실 내가 여러 가지 컴플렉스가 있다. 운동선수라면 체격도 좋고, 키도 큰 게 보통인데 내가 선천적으로 몸이 작다. 특히 지독한 슬럼프를 겪으면서 남들과 똑같이 해서는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남들 안 할 때 더 하고, 은퇴하기 전까지는 프로로서 후회 없이 축구를 하며 최고가 되고 싶다.

스투 조금 민감한 문제지만, 최근 K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인천도 끊임없는 소문에 휩싸였다. 많이 힘들지 않았나.

오히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선수들끼리 단합이 잘 됐다. 승부조작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그렇게 되지 말고 한마음으로 똘똘 뭉치자고 했다. 물론 안타까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처음 소문을 들었을 때 사실 경기를 제대로 못 뛰던 입장에선 이해가 안됐다. (웃음) 우리 선수들도 실제로 그렇게 했다면 게임을 제대로 못 이겼을 거다. 특히 창단 이후 홈에서 처음 수원을 이겼을 때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지금은 서로 신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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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 최고의 축구는 신갈고 '베스트 11'

스투 만약 해외로 나가게 된다면 어떤 팀, 어떤 리그에서 뛰고 싶은가. 역시 바르셀로나인가.

일단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뛰고 싶다. 물론 바르셀로나 같은 팀이면 더 좋다. 하지만 아까도 얘기했지만 신갈고 시절 같은 축구를 하고 싶다. 예쁜 축구, 즐길 수 있고 함께 호흡하는 축구.

스투 곱상한 외모 덕분에 여성팬도 많다. 얼마 전 '서문여고 인유반'에 갔을 때도 인기가 많더라. 기억나는 팬이나 선물이 있나

다 기억에 남는다. 음... 사실 누구를 기억할 그런 정신도 없다(웃음). 여자 친구들 앞에서 쑥쓰럼타는 건 없는데, 이상하게 팬들이 모여서 사인해달라고 하고 사진 찍자고 하면 그렇게 경직될 수가 없다(웃음).

스투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애어른'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나이에 비해 성숙했다는 소리 듣지 않나

오래 산 건 아니지만 힘든 시간을 겪어으면서 가장 중요한 게 경험이란 걸 깨달았다. 사람이 늘 좋을 수만은 없지 않나. 어린 나이에 프로 생활을 하며 슬럼프를 일찍 경험한 것은 큰 선물이다. 바닥을 치지 않고 좋은 길로만 왔었다면 나중에 이런 슬럼프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을 거다. 올 시즌 목표는 팀의 6강과 개인 공격포인트 10개 이상인데, 당장의 성적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더 연구하고 노력하겠다는 생각뿐이다. 사람이 계속 열심히 해야지 건방져지고 자만하면 안된다.

스투 '애어른' 맞는 것 같다.

(웃음) 사실 내가 원래 철없는 스타일이었는데, 사람이 한번 고생을 하니까…. 더군다나 신욱이형이랑 교회 다닌 이후 사람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친구들이 얘기하더라. 요즘엔 이영표 형이 쓰신 책을 보는 중이다. 아직 만나뵌 적은 없는데 배우고 싶은 점이 많은 선배다.

스투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나 목표가 있다면

내가 아직 부족한 게 많다. 그걸 채우려고 노력 중이다.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더 분발할 것이다. 은퇴할 때까지 오직 축구만 생각하겠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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