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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최인철 감독 "여자축구, 일본 벽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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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최인철 감독 "여자축구, 일본 벽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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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6월엔 유독 대표팀 경기가 많다. 가깝게는 지난 3일과 7일 남자 A대표팀이 세르비아와 가나를 맞아 2연전을 치렀다. 올림픽대표팀도 1일 오만과의 평가전에 이어 19일과 23일에는 요르단과 올림픽 2차 예선을 치른다. 대표팀 경기는 아니지만 15일 베트남서 열리는 박지성 자선축구경기도 관심의 대상이다. K리그는 승부조작 파문이란 큰 파도를 넘어 재기를 꿈꾸고 있다.

이들만큼 알려지진 않았지만 여자축구도 A매치를 준비중이다. 18일 오후 3시 일본 에히메 닌자니아 스타디움에서 일본과 평가전을 치른다. 지소연(고베 아이낙), 전가을(현대제철), 차연희, 박희영(이상 고양대교) 등 최정예 멤버가 자존심을 건 한판 대결에 나선다.
한일전이란 사실만으로도 단순한 평가전의 의미는 넘어선다. 그럼에도 여자대표팀에게 이번 경기가 더 각별한 이유가 있다. 2008년 11월 미국과의 2연전 이후 3년 여만에 치러지는 친선 A매치. 올해 들어 평가전만 네 차례 치른 남자대표팀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일본 내에선 공중파 전국 생중계까지 예정되있지만, 국내에선 케이블방송 중계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그만큼 대중적 인기나 인프라 면에서 한국 여자축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눈부신 성과는 과거일 뿐. 그렇다고 억지 관심을 부탁할 마음은 없다. 꾸준히 좋은 성적만이 해답인 것을 알고 있다. 특히 2012 런던올림픽, 2015 캐나다 여자월드컵 등 세계무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일본, 북한, 중국 등 아시아의 선발주자들을 넘어서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한일전은 한국 여자 축구의 진짜 위치를 다시금 점검할 수 있는 기회다.

그래서였을까. 파주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마주친 최인철 여자대표팀 감독의 표정에선 어느 때보다 결연함이 묻어나왔다. 적당한 긴장감 속 흘러나오는 자신감도 엿보였다. 그의 머릿속은 여자축구의 긍정적 비전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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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전, 세계와의 거리 알려줄 시험무대"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지난해 U-20 대표팀을 시작으로 U-17, 성인대표팀이 모두 눈부신 성과를 올렸다.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

최인철 감독(이하 최) 대표팀이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운동해왔던 젊은 선수들로 세대교체가 됐다. 어린 선수 가운데 독창적이고 실력 있는 선수가 많다. 그런 선수들을 만난 것도 감독으로서 행운인 셈이다. 지난해엔 U-20과 U-17 동생들이 성적을 내면서 A대표팀 '언니들'의 동기부여가 확실했다. 피스퀸컵 우승이나 아시안게임 첫 메달 획득이 단적인 예다. 최근에는 그런 흐름이 약간 꺾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작년과 반대로 올해는 A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동생들이 따라올 수 있는 분위기를 기대하고 있다.

스투 18일 일본과 원정 평가전을 치른다. 친선 A매치는 3년 만인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그동안 여자대표팀이 국제대회가 아니면 A매치를 치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선수들에게 중요한 경기다. 일본은 아시아 최강자이자 세계적인 강팀이다. 세계 무대로 가는 길목마다 우리를 막아섰다. 한국 여자축구가 일본에 어느 정도까지 근접했는지 시험할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자신감을 얻어올 수 있는 경기가 될 거라 기대한다.

스투 올해 초 키프로스컵 참가 이후 A매치가 없었다. 작년의 좋은 흐름이 꺾였다는 것 역시 여기서 기인한 걸까

아무래도 그렇다. 남자처럼 평가전이 자주 있지도 않았고, 소속팀의 바쁜 동계훈련일정도 있었다. 더불어 예전보다는 좋아졌지만 선수들의 의식수준도 낮다. 대표선수로서의 책임감과 스포츠 외교관으로서 자부심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스투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부족하다는 뜻인가

대표선수는 조금만 행동 잘 못해도 욕먹는 자리다. 더불어 나라를 위해 온몸을 희생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가끔 이곳에 와서도 소속팀 이적이나 집안문제를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 프로의식이 부족한 셈이다. 그래서 축구화 신고 피치에 들어서면 운동에만 집중하라고 주문한다. 여자대표팀은 타이트한 리그 일정 때문에 소집 훈련을 길어야 4박5일밖에 못 갖는다. 이 기간 동안 열흘 훈련하는 것처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생활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파주에 올 때부터 선수들의 생활에 통일성을 강조한다. 대표팀도 하나의 팀이기 때문에. 단체로 움직일 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얘기한다. 심지어 숙소에서의 방 정리 같은 사소한 문제도 지적한다. 경기장 밖에서 게으른 선수는 안에서도 게으르다. 생활에서 경기력이 나오기 때문에 하나에서 열까지 얘기하는 편이다. WK리그가 출범하면서 선수들의 의식이나 에너지가 예전보다 좋아졌다지만, 아직까지는 세미프로에 가깝다.

스투 해외 평가전도 3년 만이지만, 국내에서 여자 대표팀의 평가전이 열린 것이 6년 전 북한과의 남북통일축구가 마지막이었다. 대회 참가가 아니면 A매치가 거의 전무한 상황인데, 이는 대표팀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나

이전에도 친선 A매치의 필요성을 설파한 적이 있다. 동아시아 국가끼리 정기적으로 경기를 갖는다면 어떨까 싶다. 일본, 북한, 중국 모두 세계적인 여자축구의 강호다. 전반기와 하반기, 혹은 3~4개월에 한번 씩 이들과 홈 앤드 어웨이 친선전을 치른다면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북한은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애매하다.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대전료도 문제다. 반면 일본, 중국은 큰 어려움이 없다. 일본은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중국은 최근 힘도 기술도 어정쩡한 느낌이지만(웃음) 그래도 여전히 좋은 팀이다. 아, 호주도 있다. 호주는 아시아 연맹에 속해있지만 유럽과 거의 비슷하다. 힘있는 축구를 경험할 수 있다. 아시아에 모든 게 다 있는 셈이다.

스투 A매치가 너무 없다 보니 여자 선수 중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이 나오기도 힘들다

월드컵에 자주 간 것도 아니고, 아시아권이 아닌 국제대회에 나간것도 올해 초 키프로스 대회가 처음일 정도다. 미국의 크리스틴 릴리(40)가 A매치를 총 352경기 뛰었는데 16세부터 국가대표였다. 지소연(고베 아이낙)은 15살부터 A대표였는데 이제 겨우 33경기 나왔다. 못해도 50경기는 되야 된다. 그만큼 A매치를 못 치르고 있지만 그동안 국제대회 성적도 변변찮았기에 딱히 평가전을 요구할 명분도 없다. 그래서 앞으로의 올림픽과 월드컵 성적이 중요하다. 충분히 할 수 있다. 북한, 일본, 호주도 모두 우리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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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투 통상적으로 남자 축구는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의 벽을 넘어야 한다고 늘 주장한다. 반면 여자 축구 선수들은 유럽보다 아시아가 더 상대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유럽 선수들은 아무래도 선이 굵은 축구를 구사하기 때문에 특정한 포인트만 잡아내면 된다. 체격이 큰 걸 역이용해 우리가 민첩하게 움직이면 훨씬 유리하다. 이에 반해 아시아는 활동량도 엄청나고 체형도 비슷해서 선수들이 느끼는 게 다를 것이다. 특히 일본은 기술이 좋아서 압박감이 남다르다. 북한은 워낙 뛰는 양이 많다.

실제 우리가 일본이나 북한에 기술이나 체력, 전술적인 면에서 크게 뒤지잔 않는다. 다만 심리적인 완성도가 떨어진다. 늘 져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아시안게임에서 두 번이나 꺾으면서 자신감이 붙었지만 일본과 북한에 대해선 아직 멀었다. 그런 점에서 아시안게임 4강에서 북한에 진 것이 계속 아쉽다. 선수들이 너무 긴장해서 그랬는지 패스 등에서 잔실수가 많았다.

스투 아시아가 유독 여자축구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이유는 뭘까

일본, 중국, 북한 모두 여자축구를 일찍 시작한 나라들이다. 세계최강인 미국과 독일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여자축구가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유럽도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인프라가 그다지 좋지 않다. 더불어 국제 대회에서 얼마나 성적을 내는지가 중요하다. 일본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뒤에 자국 내에 붐이 일었다. 최근 유럽시장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여자 프로축구 유럽챔피언스리그의 영향이 컸다. 독일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며 많은 신생팀이 생겼고, 스웨덴도 그렇다. 결국 대표팀이 국제무대에서 어느 정도 성적을 내야 한다.

스투 일본과의 친선전에선 어떤 점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본은 기술과 패싱력이 좋다. 그만큼 점유율이 높은 축구를 구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비를 중요시할 생각이다. 특히 중앙수비가 견고하게 움직여야 한다.

최근 세계 여자축구가 콤팩트해졌고 빨라졌다. 공격의 기점도 중앙수비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김도연(서울시청)과 홍경숙(고양대교)의 밸런스를 맞춰놨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런데 최근 홍경숙이 결혼하면서 1년간 휴식기 갖는 바람에 무게감이 떨어졌다. 도연이는 침착하고 실수가 없는 수비수지만 터프함이 조금 부족하다.

그래서 베테랑인 김유미(고양대교)를 다시 불러들였다. 몸상태도 좋고 양발을 잘 쓰는데다 스피드와 헤딩력도 갖췄다. 도연이와의 궁합도 좋아서 나이가 있지만 망설임 없이 데려왔다. 또 하나 핵심적인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다. 주전으로 나설 박은정(서울시청)이 잘 움직여줘야 한다. 김나래(수원FMC)가 경쟁자가 되겠지만 아직은 경험과 성장이 좀 더 필요하다.

그 뿐 아니라 대표팀의 중고참급인 이장미, 박희영, 차연희(이상 고양대교), 박은정이 팀을 이끌어주고 그 아래 권하늘(부산 상무), 전가을(현대제철), 이은미(고양대교), 김도연, 지소연 등이 잘 받쳐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누구 하나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으로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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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연-여민지, 한국 여자 축구의 대들보

스투 지소연은 한국 여자 축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다. 개인적으로 지소연의 일본 진출에 아쉬움이 있는 사람 중 하나다. 미국행은 대찬성이었지만 이런저런 현실적 문제로 결국 틀어졌다. 결과론적이지만 차라리 애당초 국내에 남아 WK리그의 흥행을 주도하면 어땠을까란 생각도 든다.

미국이나 독일 등 원하는 곳에 갔으면 좋을 뻔했다. 그런데 유력했던 미국행이 그쪽 팀이 해체되며 무산됐다. 독일에서도 소연이에게 관심이 있었는데 너무 미국행에 몰두하다 보니 흐지부지 지나가버렸고…. WK리그에 진출하기엔 드래프트 문제가 걸렸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눈을 돌린 것이 일본인데, 그래도 대표팀 입장에선 가까운 곳에 있어서 오히려 좋다. 고베 구단 회장도 재일교포 출신이다. 가끔 소연이와는 통화하는데 살만 조금 찐 것 빼고는 괜찮다(웃음). 오히려 같은 팀에 입단한 (권)은솜이가 경기를 못 뛰고 있어 안타깝다.

스투 지소연과 자주 연락 통화를 하는가. 얼마 전 일본 진출 후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는데 특별한 얘기가 오갔는지

가끔 한다. 내가 먼저 연락할 때도 있고 소연이가 할 때도 있다. 일본에서 소연이는 축구 쪽으로 문제될게 전혀 없다. 늘 소연이에게 '거기서 넌 배울 게 없다. 일본 축구 배우고 올 게 아니라 네가 뿌리를 내려라'라고 조언해준다. 소연이는 장점이 대단히 많은 선수다. 뭘 배우려다 보면 그 장점이 사라질 수도 있다. 자신의 축구를 하라고 강조한다.

스투 지소연과 또 다른 공격수 여민지(함안대산고)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사실 소연이가 전술이해도는 썩 높지 않다. 뭐 하나 가르쳐주면 다른 선수는 다 알아들었는데 혼자 '어, 선생님 그거 어떻게 해요'한다. 멍한 면이 있다(웃음). 그 대신 이해하면 서너 가지를 더 해낸다. 본능적으로 공을 차는 선수다.

반면 (여)민지는 교과서적이다. 문전에서의 득점력이나 타이밍은 아주 뛰어나다. 3월 키프로스컵에 데려갔는데 몸상태가 올라오니까 패스 타이밍까지 좋아지더라. 다만 소연이같은 섬세한 컨트롤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찬스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좀 떨어진다.

스투 그럼 이 둘이 합쳐지면 대단한 힘이 발휘될 수 있겠다

물론이다. 3년 뒤에는 민지도 22살이고, 지소연은 가장 노련해져 있을 때다. 엄청난 시너지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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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잘생겨서 좋잖아'

스투 김나래가 U-20 대표팀 시절 감독님은 '호랑이'였는데, A대표팀에선 '천사'가 됐다고 하더라.

여자는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다. 채찍을 가할 때와 당근을 주는 타이밍이 있다. 나래를 비롯한 U-20 대표팀은 18살 때부터 같이 했던 선수들이다. 어린 선수들이어서 대표로서의 의식이나 기본 마인드가 떨어졌다. 잘못된 경기 습관도 배여있었다. 그걸 바꾸는 게 쉽지 않았고, 그래서 더 혹독하게 대했다.

반면 성인대표팀은 받아들이는 능력이나 지적, 전술적 능력이 한 차원 높다. 내가 부드러워진 게 아니라 현실에 맞게 움직이는 것이다. 앞으로 A대표팀에서도 나태해지는 분위기가 감지되면 이를 잡기 위해 강하게 채찍을 내리칠 수 있다. 여자가 분위기에 약하지 않나(웃음)

스투 여자팀을 10년 가까이 맡다 보니 여자 심리를 읽는 데는 달인이 됐겠다.

선수들이 어릴수록 시샘이 많다. 그래서 누굴 예뻐하는 티를 잘 안 낸다. 덕분에 내가 누구를 편애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않았다. (지)소연이 같은 경우 워낙 어려서부터 가르쳐왔던 제자여서 속으로 상당히 예뻐한다. 그런데 막상 혼날 땐 제일 많이 혼난다. 사실 인격적으로 똑같이 존중할 순 있지만 사랑까지 똑같이 주긴 어렵다. 다만 티를 안낼 뿐이다. 감독으로서 선수는 확실히 알되, 내 모습은 약간 베일에 싸아둔 채 신비감이 있어야 한다(웃음) 물론 신뢰를 주고받는 사이는 중요하다.

스투 선수들이 '최인철 감독님은 잘생겨서 좋다. 탤런트 공유 닮았다'고 하더라

여자선수들이니까... 뭐 못생긴 것보단 낫지 않겠나(웃음)

스투 최근 대표팀 소집 훈련에서 선수들에게 '빨리 결혼해서, 빨리 애 낳고, 빨리 복귀해라'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던데

(웃음) 축구선수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여자로서 인생에 대한 계획이 있다. 이를 대표팀과 소속팀이 모두 존중하고 맞춰줘야 한다. 일반 직장에 다녀도 출산휴가가 있지 않나. 예전엔 결혼하면 운동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였다. 운동 선수의 결혼과 출산도 구단이 장려해주고 대표팀도 도와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래야 근본적으로 운동 선수 생명도 길어진다. 특히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된다. 엄마는 여자보다 강하다. 훨씬 더 좋은 운동선수로서 거듭날 수 있는 계기다.

물론 아직 여자축구계에서는 선수가 임신해서 선수 생활을 쉬는 경우가 아직 없었다. 그래서 얼마 전 결혼한 홍경숙의 역할이 중요하다. 1년 간 휴식기를 받았는데 그 사이에 출산하고 팀에 복귀해 잘 뛴다면 좋은 변화의 흐름을 이끌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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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독일의 여름

스투 짧게나마 U-20 월드컵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FIFA가 주관하는 국가대항전에서 처음으로 3위에 올랐고, 덕분에 개인적으로도 A대표팀 지휘봉까지 잡을 수 있었다. 대회에 출전할 당시만 해도 그렇게 좋은 성적을 올릴 거란 생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선수로나 지도자로서나 세계 월드컵 대회에 나가는 건 처음이었다. 하지만 훈련도 많이 했고 준비를 잘 한만큼 자신도 있었다. 선수들에게 티는 안 냈지만 4강 이상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일단 첫 게임만 잘 치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대팀 스위스의 DVD도 정말 많이 봤다. 예상대로 승리하면서 선수들 자신감이 올라가고, 예상했던 것들이 하나씩 맞아들어갔다. 감독으로서 짜릿했다. 승리할 때마다 선수들이 태극기를 들고 재독 교포들 앞에서 박수받으며 피치를 돌던 모습, 나는 선수일 때 하지 못했던 일이라 기분이 더 좋았다.

스투 그랬기에 준결승에서 독일에 1-5로 대패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겠다

물론 독일이 워낙 강팀이고 홈팀이긴 했지만 질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우리도 기술, 체력, 전술 모두 4강에 오를 자격이 충분했다. 그런데 선수들의 멘탈이 그렇게까지 무너져있을지 몰랐다. 내 실수였다. 선수들에게 심리적으로 침착하라고, 절대 흔들리지 말라고 너무 강조했다. 그저 경기장에서 즐겁게 뛸 수 있게 해줬어야 하는데, 전반 내내 선수들이 멍해져 있는 걸 보며 아차 싶었다. 그래서 하프타임 때 10골을 먹어도 좋으니 우리의 경기를 펼치자고 했다. 다행히 그때를 거울삼아 3위 결정전에서 콜롬비아를 꺾을 수 있었다.

스투 반대로 가장 기분 좋은 승리는 언제였나

스위스전 첫 승이나 가나전도 통쾌한 역전승도 좋았지만 8강 멕시코전 승리가 최고였다. 경기력도 좋았고 많은 에너지를 발산했던 경기였다. 그때 멕시코가 상당히 좋은 팀이었다. 일본에게도 이길 정도였다. 상당히 준비를 많이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실 8강에서 나이지리아를 만날 수도 있었는데, 워낙 남자같이 체격과 스피드가 좋은 상대라 부담스러웠다. 오히려 멕시코는 전술적이고 기술적이서 분석하기 편했다. 다행히 멕시코를 만나면서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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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축구 르네상스, 키워드는 국제대회 성적

스투 지난해에 비해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이 많이 시들해진 게 사실이다. 서운한 마음도 있을텐데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그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지난해를 계기로 여자축구가 어떤 것이며,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팬들에게 보여줬다. 이제 국제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꾸준히 낸다면 관심은 다시 돌아온다. 우리가 억지로 관심을 쫓을 필요는 없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분명한 건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고,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투 같은 A대표팀이라도 남자와 여자의 대우는 천차만별이다. 앞서 얘기했던 평가전 일정 같은 문제부터 물품 지급, 연습 구장 배정 등 사소한 부분까지. 선수들조차 그런 차별 받는 듯한 분위기에 아쉬움을 토로하더라.

여자 선수들이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자 대표팀과 단순 비교하긴 어렵다. 남자는 월드컵에도 꾸준히 나갔고, 수익 등 여러 면에서 협회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더군다나 여자축구는 시작도 늦었다. 남자 축구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길을 가야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크게 신경을 안 쓰는데, 선수들은 여자라 그런지 좀 예민하게 느끼는 것 같다. 분명 협회도 좋은 훈련 환경과 대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스투 인식이 많이 좋아졌음에도 아직 여자 축구에 대한 기반은 약하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하는 선수가 드물다. 해외의 경우 유치원 때부터 유소년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지루하지 않은 말이다. 사실 태권도장에도 여학생이 많은데 축구장에선 보기 어렵다. 요즘 구단 혹은 개인이 운영하는 유소년 클럽이 많은데, 여자 클럽은 거의 없다. 이들이 장기적 안목에서 2~5명의 여자 선수만 보유해도 좋을 것 같다. 그 중 한 명씩만 잘 성장해도 엄청난 효과가 아니겠는가. 지도자와 학부모의 편견도 문제다. 이를 타파하지 못한다면 인프라 확충은 어렵다.

스투 한국 여자축구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지소연같은 스타가 나오는 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저 돌연변이 기린아인가.

축구인들과 만날 때마다 늘 하는 얘기가 '우리나라는 남녀불문하고 정말 스포츠 잘하는 민족'이란거다. 사실 남자도 세계적으로 인프라가 적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이회택, 차범근 같은 선수가 꾸준히 배출되지 않았나.

여자축구도 태동기인 90년대부터 차성미, 강선미(고양대교) 등 독창적이고 뛰어난 선수가 나왔다. 권하늘, 전가을, 조소현(현대제철)도 정말 좋은 선수들인데 환경이 뒷받침 안돼 더 발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소연이라는 괴물 같은 선수가 태어난 거다(웃음) 체격은 작지만 정신, 기술, 체력 모두 굉장히 강한 선수다.

스투 K리그가 남자대표팀의 젖줄이듯 WK리그도 여자대표팀의 기반이다. 그럼에도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장 WK리그는 홈경기 제도도 없지 않은가

K리그도 열악하게 시작했듯이 WK리그도 초창기라 열악하게 출범했다. 물론 각 팀들이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선 고정적인 홈 관중과 서포터즈가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홈 앤드 어웨이 제도는 필요하다.

그런데 정작 더 시급한 문제가 있다. WK리그 이전에 하부조직이 모래시계 형태다. 실업팀이 8개인데 대학팀이 6개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한 팀은 올해 신입생을 받지 않아 해체 직전이다. 하부조직이 약해선 상부도 유지되기 힘들다. 고등부-대학부-프로팀이 하나의 연고를 가지고 하나의 시스템에서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위에서 잘 해보려 해도 밑에서 좋은 선수가 나오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하부조직을 제대로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그래야 나무가 자라듯이 커질 수 있다.

스투 가깝게는 2012 런던올림픽부터 멀게는 2015 여자월드컵을 앞둔 상황에서 대표팀 운영에 대해 어떤 마스터플랜을 갖고 있나

지난해 말 내가 팀에 부임한 이후 세대교체가 잘 됐다. 몇몇 포지션에 아직 노쇠화된 선수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꾸준히 발전 중이기 때문에 3년 정도 뒤에는 대표팀이 정점에 오를 것이다. 친선 경기도 계속 치르며 경험을 쌓고, WK리그 감독들과도 잘 소통해서 장기적인 플랜을 가져갈 생각이다. 이후 여민지 또래의 재능있는 어린 선수들까지 합류하면 3,4년 뒤에 한국 여자축구는 전성기를 맞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아가 향후 10년간 대표팀을 움직이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스투 그렇다면 구체적인 성적에 대한 목표도 있는가

우리 대표팀의 상태가 60%라면 90, 100%까지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다. 그런 수준에서 간략하게 계획은 잡아둔 상태다. 구체적인 단기 목표는 당연히 최초의 올림픽 본선 진출이다. 아시아의 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일단 런던에 입성만 한다면 그 이후는 자신 있다. 철저히 준비하고 때를 기다린다면 기회는 온다. 다만 월드컵은 4년 후인데 내가 중간에 쫓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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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조작? WK리그는 거짓없이 뛴다

스투 최근 남자프로축구계에서 승부조작이 문제로 대두했다. 이에 대해 여자선수들이 '남자축구에 비해 여자축구는 아직 순수한 면을 갖고 있다'고 얘기했는데

예전에 독일에 갔을 때 여자 축구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한 독일 관계자에게 왜 이렇게 여자축구 인기가 많은지 물어봤었다. 그 관계자는 자신 역시 예전에는 분데스리가 팬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보지 않는다고 했다. 남자축구가 지나치게 상업화·산업화가 되다 보니 비열해졌다고 하더라. 반면 여자축구는 순수하고 거짓 없이 뛴다며, 아직 축구 그대로의 모습을 갖고 있어 여자축구만 본다고 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거짓됨이 없다. 남자보다 힘이나 역동성은 부족하지만 순수하게 뛴다. 남자축구도 그 시장이 커지다 보니 어둠의 손길이 뻗쳤다. 워낙 토토나 프로토가 유행하면서 선수들도 한다는 소문은 들었다. 사실이라면 큰일 한번 나겠다 했는데, 실제로 드러나면서 이게 장난이 아니란 걸 느꼈다. 축구인으로서 안타깝다. 물론 환경적인 문제도 있다. K리그 뿐 아니라 내셔널리그도 그렇고 소외된 선수들의 생활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맹이나 구단이 이들을 좀 더 신경 써주고 도와준다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스투 그렇다면 WK리그도 위험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 대부분의 선수가 K리그 신인 최고 연봉보다도 못한 돈을 받고 있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만 여자는 심리적으로 단체로 움직인다. 왜 여러 사람 중 한 명 울면 다 울지 않나. (웃음) 한두 사람의 유혹으로 쉽게 넘어가진 않는다. 물론 역으로 전체가 동요될 수도 있지 않으냐고 하겠지만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스투 끝으로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더불어 여자축구계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달라

항상 대표팀은 성적과 직결된다. 내가 하고 싶은 건 올림픽 최초 진출과 월드컵 4강 이상의 성적이다. 그만큼 대표팀의 경기력도 향상시킬 것이다. 어느 팀과 붙어도 우리만의 경기를 펼치는 것이 목표다. 선수들의 인성과 프로정신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다.

1990년 한국 여자축구가 시작된 뒤 어느덧 21년째다. 그럼에도 아직 여자축구계 전체로 봤을 때 서로에 대한 신뢰감이나 조직이 약하다. 여자 축구에 관계된 협회, 정부, 구단, 선수 모두가 하나의 팀이고 여자축구의 성장과 발전이란 공동의 목표가 있다. 누가 잘되든 못되든 서로 박수치고 격려해줄 수 있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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