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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트리오' 만든 어머니의 '母鄭'..이원숙 여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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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트리오'가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86번째 생일을 맞아 2004년 9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협연을 했을 때의 사진. 왼쪽부터 정경화씨, 이원숙 여사, 정명훈씨, 정명화씨.    사진=서울시향 제공

'정트리오'가 어머니 이원숙 여사의 86번째 생일을 맞아 2004년 9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협연을 했을 때의 사진. 왼쪽부터 정경화씨, 이원숙 여사, 정명훈씨, 정명화씨. 사진=서울시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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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 이화여전 가사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교편을 잡은 그가 선택한 또 다른 직업은 '어머니'였다. 교육을 받은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던 때에 그는 가정을 꾸린다면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로 남편과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그렇게 '어머니'가 됐다. 시장에서 음식장사를 해 억척스럽게 돈을 벌고 자녀 교육이라면 극성을 떨 만큼 지극정성이었던 그는 7남매 모두를 훌륭하게 길러냈다. 세계적인 지휘자, 첼리스트, 바이올리니스트, 의사, 교수로. '어머니', 이 석자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고 떠난 그는 '정트리오'의 어머니 이원숙 여사다. 그가 15일 오후 11시 47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1918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그는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정명훈씨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 첼리스트 정명화씨의 어머니다. 배화여고와 이화여전을 졸업한 뒤 동덕여고에서 교사로 일하던 그가 자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광복 직후였다. 시장 한 켠에 천막을 치고 국밥장사를 시작하고 보니 시장이라는 환경이 아이들을 거칠게 만들까봐 걱정이 됐다. 그는 외상으로 피아노를 샀고, 장사를 하는 틈에도 자녀들의 피아노 레슨 시간이 되면 옆에 꼭 붙어 앉아 지켜봤다. 6.25때는 부산으로 피란을 가면서 피아노를 싣고 갔을 만큼 자녀교육에 유별났던 그다.
1962년엔 먼저 유학 보낸 명화씨와 경화씨를 따라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광복 직후 서울 시장통에서 음식장사를 했던 것처럼 미국에서도 식당을 운영하며 남편과 자녀 일곱을 뒷바라지 했다. 정트리오를 세계적인 스타로 키워낸 건 이 같은 정성어린 바라지만은 아니었다. 그에겐 남다른 자녀교육법이 있었다. '조기 교육에는 극성을 떨어도 좋다' '실수를 야단치지 않는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교육철학을 가졌던 그는 음악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던 자녀들을 다그치는 대신 식당에서 받은 팁을 모아 그랜드 피아노를 선물하고, 연주회에 직접 데려가 음악에 흥미를 느끼도록 했다.

세계 정상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무렵 힘이 들어서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경화씨에겐 '바위올린을 위해 바이올린을 해서야 되겠냐'며 지금 당장 그만두자고 말한 그다. 자녀들의 각기 다른 특성을 잘 살펴 개성에 맞는 악기를 쥐어주고, 스스로 음악을 하고 싶어 할 때까지 믿음으로 기다려준 그의 교육법은 명훈씨와 경화씨, 명화씨를 세계 정상의 음악가로 만들었다.

극성스럽게 자녀들을 아꼈던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을 때 밤을 새워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자녀들이 모두 결혼을 한 뒤에는 신학대학에 입학해 공부했을 만큼 자녀들에게 모범이 되는 어머니였다. 1990년엔 세화음악장학재단을 설립해 음악계 후진 양성을 위해서도 힘썼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71년 새싹회 어머니상, 199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1995년 자랑스런 이화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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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밤 그의 빈소엔 첫째 아들 명근씨와 명화씨, 명화씨의 남편 구삼열씨가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목례를 마친 뒤 명근씨는 "어머니를 이렇게 보내드려야 한다는 게 속상하다"며 "그래서 이렇게 모두 함께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상심이 크겠다는 말에 명화씨와 삼열씨는 다소 지친 표정으로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1호실. 발인은 18일 오전 11시. 장지는 미국이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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