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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2년차 W기자의 ‘이경규의 꼬꼬면’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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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 2년차 W기자의 ‘이경규의 꼬꼬면’ 정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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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은 다양한 재료를 다양한 비율로 조합한 스프와 혀에 닿는 감각과 씹는 탄력을 고려한 면의 굵기 등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최상의 단계로 끌어올린 완전체 식품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완벽 이상의 단계를 추구하는 수많은 미식 탐구가들에게 도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 3월 13일부터 3주에 걸쳐 방영된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라면의 달인 편’은 바로 이러한 탐구 정신의 궁극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은 라면 추종자이자 식(食)탐정을 꿈꾸는 W에게도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다음은 W가 ‘라면의 달인’의 히트 브랜드인 ‘이경규의 꼬꼬면’(이하 ‘꼬꼬면’)의 맛을 추적하는 과정을 학인의 마음으로 서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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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으로, 찬장을 열었다. 언제나 그렇듯 차곡차곡 쌓인 라면이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지만 잠시 주저했다. 왜 배가 고플 땐 습관처럼 라면에만 의존하는가. 누가 끓여도 맛있는, 그 완벽함에 기댄 안일함은 아닌가. ‘남자의 자격-라면의 달인 편’이 떠올랐다. 방망이 깎는 노인의 마음으로 맛의 밸런스를 맞추던 장인들의 모습이 그려지며, 한동안 잠들어 있던 탐구 정신이 깨어났다. 그런데, 어떤 라면을 시도해야 할까.
우선 원칙을 정했다. 이것은 TV를 보고 짐작한 맛을 원점에서 가장 그럴싸하게 구현하는 탐구 및 추리의 과정이다. 첫째, 검색의 도움 없이 TV에서 공개된 재료와 비율을 지키며, 둘째, 재료비는 최대한 아끼며, 셋째, 음식 재료 외의 조리 도구는 따로 구매하지 않는다. 여기에 가장 맞는 라면을 골라야 했다. 셜록 홈즈는 ‘불가능한 것들을 제거하고 남는 것이 진실’이라고 말했다. 불가능한 것들을 지워나갔다. 육해공 재료로 육수를 우린 ‘908 라면’? 차돌박이가 들어간 ‘파차면’? 요리 프로그램의 가정집 냉장고는 롤플레잉 게임의 던전과도 같아서 안 먹고 쟁여놓은 해산물과 고기 등등으로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먹을 수 있지만, 자취하는 남자의 냉장고에는 맥주 3종과 김치, 라면에 넣어 먹으려 사뒀던 청양고추만이 있다. 재료의 가짓수와 가공 과정, TV를 통한 레시피 공개 여부를 생각할 때, 남는 진실은 결국 ‘꼬꼬면’이었다. 있는 것은 라면과 청양고추, 없는 것은 치킨 스톡과 계란, 대파, 닭 가슴살(훈제), 실고추였다. 5가지만 사는 쇼핑,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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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식품 코너 어딘가를 방황하고 있다는 것만 자각할 뿐,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계란은 제일 싼 걸 고르기만 하면 됐다. 대파는 씻고 알맞은 사이즈로 잘려 포장된 모델로 골랐다. 닭 가슴살은 ‘남자의 자격’에 나온 것처럼 훈제된 것이어야 했고, 간편 가정식 코너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치킨 스톡은 국거리용 멸치가 티백으로 나온 조미료 코너에서도, 수많은 파스타 소스가 있는 수입식품 코너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미궁을 헤매는 기분이었지만, 최대한 스스로 수수께끼를 풀어간다는 원칙 때문에 직원에게 묻는 대신 퀴즈 프로그램에서도 허용된 전화 찬스를 썼다. 하지만 전화기를 통해 들려온 목소리는 자기에게 묻느니 직원에게 물어보라 말했다. 직원은 친환경 식품 코너를 가리켰고, 그 코너에서 다시 한 번 물어보고서야 이경규가 쓰던 가루형이 아닌 액상형 닭 육수를 찾을 수 있었다. 가루형은 근처 백화점에나 있을 거라는 대답과 함께. 그렇다면 학인의 마음가짐으로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경규도 수많은 치킨 스톡으로 실험해 현재의 맛을 냈으니 액상형, 가루형 치킨 스톡 두 개 모두 구매해 두 가지 버전 ‘꼬꼬면’을 실험해보는 건 어떨까. 백화점까지 가서 확인한 치킨 스톡은 정확히 말해 가루형이 아닌 큐브형이었고, 이것도 샀다. 5개 물품 쇼핑하는데 걸린 시간 1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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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간이 또 이렇게. 레시피 재확인 때문에 케이블방송 VOD로 ‘남자의 자격’을 틀었고, 앉았고, 재밌고, 1시간이 경과됐다. TV로 확인할 수 있는 건, 치킨 스톡 12g과 물 500㎖, 청양고추 12조각과 대파 18조각으로 육수를 낸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12조각과 18조각의 길이는 어떤 기준으로 정해야 하는가. 수학적 사고가 필요했다. 이경규는 청양고추를 한 개 반 사용한다고 말했다. 줄자를 이용해 측정한 청양고추의 길이는 10㎝, 따라서 한 개 반의 길이는 15㎝, 15㎝를 12등분하면 각 1.25㎝. 물론 ‘조각’의 의미가 청양고추와 대파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었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한 번 추론한 원인이나 진상은 중언부언하는 것이 아닌 법’이라는 <장미의 이름> 윌리엄 수도사의 말처럼 여기선 ‘조각’의 길이가 동일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 더 번잡스런 추리이기에 대파 역시 1.25㎝로 18조각을 냈다. 저울은 없었지만 치킨 스톡의 양을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통에 적힌 큐브형 치킨 스톡의 개당 무게가 4g이기에 3조각을 사용했다. 문제는 계량컵 없이 물 500㎖를 맞추는 것인데 이 역시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집에 있는 H브랜드의 맥주 컵에는 맛있는 거품 양을 위해 250㎖ 지점에 표시가 되어있다. 이 눈금에 맞춰 2번을 냄비에 부으면 정확히 500㎖가 나온다. ‘꼬꼬면’을 위해 윌리엄 수도사와 맥가이버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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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아. 끓고 있는 육수의 맛을 보며 나온 첫마디다. 각종 양념과 향신료가 첨가된 치킨 스톡의 향은 좀 강한 편이었지만 청양고추의 얼얼한 맛 덕에 느끼하거나 비리진 않았다. 개운한 맛을 위해 이경규가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예상과 다르게 진행된 부분이 있다면 면을 끓이는 시간이다. 집에 있던 S사의 라면사리는 3분이 되어도 아직 충분히 익지 않았고 때문에 4분 동안 끓였다. 그 때문일까. 전자레인지로 데운 닭 가슴살과 실고추로 고명을 올린 첫 ‘꼬꼬면’을 시식하며 ‘괜찮네’ 다음으로 든 생각은 ‘좀 짜다’였다. 기대했던, ‘꼬꼬면’을 위해 준비했던 의성어 ‘쿵따라닭닭 삐약삐약’ 같은 울림이 오진 않았다. 대파와 청양고추는 처음부터 넣고 끓여 좀 흐물흐물해졌고, 막판에 넣고 잠깐만 휘저었던 계란 흰자도 생각보다 너무 빨리 단단하게 익어버렸다. 큐브의 양을 2개로 조절하거나, 물이 졸아들 걸 계산하고 500㎖ 이상을 붓는다면, 혹은 2분만 끓여도 되는 O사의 라면사리를 사용한다면 현재의 재료 안에서 최상의 레시피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보다 먼저 실험해야 할 것은 액상 치킨 스톡을 이용한 ‘꼬꼬면’이었다. 그래도 우선 만든 ‘꼬꼬면’ 1호는 깨끗이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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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상 치킨 스톡이 생각보다 연한 맛이라 ‘꼬꼬면’ 2호는 물 첨가 없이 오직 육수만으로 끓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싱거운 게 문제였다. 액상 스톡은 라면 대회 예선에서 심사위원이 말한 ‘삼계탕 맛’에 더 가까운 맛을 냈지만 어딘가 밍밍했다. 지금 추리해보건대, ‘꼬꼬면’ 1호를 국물까지 싹 다 먹어치우며 미각이 어느 정도 마비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요리왕 비룡>에서도 진한 게 육수 때문에 일품 게살 완자 튀김의 맛을 느끼지 못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가. 어쨌든 중간 중간 소금으로 간을 했지만 육수는 끝내 어딘가 심심했고, 전체적인 맛은 ‘꼬꼬면’보다는 ‘계란탕면’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1호가 새로운 레시피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 종류였다면 2호는 잘못된 만남이었다. 차라리 육수에 라면 스프를 넣고 끓이면 어땠을까 발상의 전환을 해봤지만, 이미 뱃속에선 두 개 버전의 ‘꼬꼬면’이 꼬꼬댁거리고 있었다. 하여, 이 모든 여정을 통해 깨달은 결론은 ‘꼬꼬면’이 맛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좀 더 크고 원론적인 다음의 두 가지다. 지적 포만감을 채우기에, 인간 위장의 크기는 아직 너무나 작다. 그리고 냉장고에 김치는 미리미리 채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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