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초읽기
네이밍이 중요한 건 정책도 마찬가지.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돌연 "일반의약품(OTC)을 가정상비약으로 바꿔 부르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그는 아울러 "OTC라고 하면 필요성이 잘 와닿지 않는데 이걸 가정상비약으로 바꿔 부르는 것도 인식 전환을 위해 고려해 볼만하다"고 했다. '꼭 필요한 약을 24시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의도다. 재정부는 조만간 기존의 정책들을 가다듬어 '서비스 선진화 종합대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OTC 슈퍼 판매'는 재정부의 해묵은 숙제다. 재정부는 소화제나 두통약, 피로회복제처럼 의사 처방 없이 살 수 있는 약들을 슈퍼나 편의점에서도 팔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해왔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들이 필요할 때 쉽게 약을 살 수 있고, 판매처가 늘어 약 값도 떨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반면 보건복지부와 대한약사회 등은 의약품 오남용 가능성을 들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OTC 슈퍼 판매는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시선이 적지 않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OTC 슈퍼 판매를 지지하고 있는데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거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소비자시민모임과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5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위한 시민연대'는 지난달 27일 국민권익위원회에 "OTC의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해달라"는 내용의 청원문을 냈다.
공정위도 지난 8일 대한약사회와 대한의사협회, 소비자시민모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의 관계자를 한 데 모아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표면적으로는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공론화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공정위는 올해 업무보고에서 보건·의료 등 국민생활과 밀접한 분야를 중심으로 3단계 진입 규제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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