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명보험'하면 사람들은 사망, 사고, 질병, 노후, 연금 등 아주 구체적인 단어를 꼽는다. 생명보험이 뿌리내리지 못했던 70~80년대만 하더라도 죽음 이라는 부정적 단어가 압도적이었는데, 세상이 달라져도 참 많이 달라졌다. 현대인들은 이제 어떻게 먹고 사느냐 보다는 어떻게 안전하게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 들어간 만큼 '생노병사'라는 문제를 바탕으로 인생을 설계해주는 보험이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세로 거슬러 올라가서는 13~14세기에 독일에서 발달한 길드(Guild)를 대표적인 상호구제제도로 꼽는다. 길드는 항해 도중에 발생한 선박이나 화물의 손해를 공동으로 부담하였고 구성원의 사망, 화재, 도난 등의 재해도 구제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생명보험에 쓰이고 있는 수리적 기법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17세기 말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전쟁으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탈리아의 은행가인 톤티(Lorenzo Tonti)와 손잡고 톤틴연금제도를 시행했다. 이 제도가 최초로 근대식 수리기법이 적용된 연금상품이다. 톤틴연금은 사망률, 이자계산방법 등이 적용됐고, 이는 근대적 생명보험사상을 보급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요즘에도 종종 부모님들이 친목도모를 위해 하시는 계모임이 수 백 년 전인 조선시대 때 생겨났단 얘기다. 보(寶)는 그 보다 더 오래 전인 신라시대에 생겨나 고려시대에 와서 크게 전성했던 상부상조 제도다. 원래 불교에서 공동재산을 운영하여 그 이자로 자선이나 대부를 해주었던 것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회적 보장제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생명보험의 효시가 되었던 동서양 제도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평상시에 여럿이 돈이나 물품을 모아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위기에 처한 소수를 도와 준다는 것인데, 독일학자 마네스(Manes)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One for All and All for One)'. 이 말은 현재까지도 생명보험의 상부상조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로 널리 인용되고 있다.
세계 최초의 생명보험사는 지금부터 248년 전인 1762년 설립된 에퀴타블생명보험사다. 이 회사는 신체검사, 가입금액 제한, 해약환급금 등 오늘날의 생명보험사 운영의 기초가 된 각종 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1921년 한상룡씨가 세운 조선생명이 최초의 생명보험사인데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영업을 하지 못했다.
1940년대부터 50년대 말 사이에는 최근까지 역사와 전통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대형생명보험사들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대한생명, 협동생명, 고려생명, 흥국생명, 제일생명(현 알리안츠),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 등이 그 때 탄생했던 것이다. 이 후 수 많은 생보사들이 생겨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2009년 현재 22개의 생명보험사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보험사의 그 역할 만은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있다. 보험에 가입한 고객들이 미래에 불시에 닥칠 수 있는 역경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보험회사가 장기간에 걸쳐 보장해주는 사회적 제도가 바로 생명보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래 세계에서 생명보험회사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프랑스의 유명한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미래의 물결'이라는 저서를 통해 앞으로 노령화, 도시 팽창, 지구온난화, 분쟁과 테러 등 여러 불확실성이 증가함에 따라 보험에 대한 수요가 늘고, 사회보장 기능 역시 경쟁력이 높은 민간기업들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또 고객들이 위험에 처할 확률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험사들이 제시하는 삶의 방식, 즉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 기준들이 보편 타당한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여져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규범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의 말대로라면 미래의 보험사 역할과 위상이 한 차원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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