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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무너진 사회 교육을 다시 세우자⑩] 전공교육의 회색빛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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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교육 의미 사라진지 오래..적자생존의 현실, 겉도는 교육

[아시아경제 고정수 기자] "현실에 적합한 개체만이 살아남는다." '적자생존(適者生存)', 허버트 스펜서의 진화론을 들먹이지 않아도 대학생들에게 이는 이미 지상과제다. 현실은 무척이나 냉정하다. 무림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수들의 전쟁은 실로 치열하다.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공인된 영어인증서ㆍ잘 가꾼 학점은 기본이고 컴퓨터 및 회계 자격증ㆍ강요된 봉사활동 경험도 필수다. 이 기준에 못 미치는 취업준비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국가고시를 치르라는 '구조적 압박'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소위 '증'이 없으면 살기 벅찬 사회 때문에 대학생 시절은 전공보다는 스펙쌓기가 주가 되는 현실이다.

◆전공내용을 반영 못하는 입사시험=실제로 전공내용을 반영한 입사시험을 치르는 곳을 찾기가 힘들다.

지난해 지방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 모(남ㆍ31)씨는 서울 소재 대학 출신이다. 신소재공학을 전공한 그는 학점도 4.5만점에 3점 후반이었을 만큼 전공 공부에 충실했다.
그와 같이 공부했던 몇몇 친구들은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에 전공을 살려 입사했다고 한다. 이 친구들 못지않던 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이유는 전공과 무관한 영어성적과 기업마다 실시하는 인ㆍ적성검사가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기업이 실시하는 인ㆍ적성검사는 직무 수행과 관련된 언어력과 수리력ㆍ추리력ㆍ공간지각력 등의 기초지능 검사와 일을 수행할 때 부딪치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평가하는 검사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 상 언어ㆍ수리 시험과 다를 바 없다.

이씨는 "기업 취직에는 실패하고 경기는 계속 어려웠다. 공무원이셨던 부모님이 권하는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을 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인문학 전공자 홀대가 행정고시 응시하게 만들어=서울의 유명한 사립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한 김 모(남ㆍ28)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전공에서 조금이나마 비전을 찾았더라면 내가 행시를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밝혔다. 4.5만점에 3점 후반의 학점을 가졌고 토익점수는 900점을 훌쩍 넘겼다고도 했다. 취업의 걸림돌은 단 하나, 그의 전공이었다.

"기업들은 경제ㆍ경영관련 업무에선 경제ㆍ경영전공자들만을 뽑았다. 인문학 전공자에겐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일반 사무직으로 일하길 원하지 않아 차라리 행시를 봤다"고 그는 고백했다.

해당 대학교의 행정고시준비실 관계자는 "행시실은 일반 기숙사와 달라 자유로운 입ㆍ퇴실이 가능해 공식적 자료라 말하기 어렵지만, 행시과목과 관련된 정치ㆍ경제전공자가 아닌 이들이 약 3배 쯤 행시실에 더 많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입실 경쟁률 역시 자유로운 입ㆍ퇴실을 감안해도 지난 행시 1차 대비 입실시험 기준으로 약 4대1이었다"고 덧붙였다.

신림동 고시촌 및 개인 도서관 이용으로 대학생 행시 준비자가 분산된 것을 참작하면 분명 낮은 수치는 아니다.

◆경제ㆍ경영 전공자도 불안=경제ㆍ경영전공자들도 모두가 취업상황을 낙관하지 않는다. 'CPA(공인회계사)불패론'이 이들 사이에서 다시 화두가 되고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 CPA 준비실의 입실경쟁률은 근 2년 사이에 약 3대1에 이르렀다고 복수의 CPA준비생들은 입을 모았다. 불과 2대1을 넘기지 못하던 2년 전에 비하면 경쟁률이 거의 두 배나 올랐다고 한다.

이곳에서 시험을 준비한 경영학과 출신 최 모(남ㆍ30)씨는 지난해 두 번의 도전 끝에 CPA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최근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 경영학과생들의 불안감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경영학과생들은 CPA가 없더라도 전공공부를 열심히 해서 투자은행에 취업하는 걸 목표로 삼아왔는데,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경영학과생들에게 안전한 투자은행이란 없다는 신호가 됐다"는 얘기다.

그는 "취업시장 자체가 얼어붙은 마당에 CPA 자격증 취득은 그들에게 취업을 보장하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통계청의 지난 8년간(2000~2007)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청년층의 구직포기이유 중 '전공이나 경력에 맞는 일거리 부재'는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전공을 취업의 장애요소로 여기는 취업준비생들이 늘어난다는 증거다.

이들은 자신의 생존을 보장해 줄 자격증을 찾는 중이다. 취업시장에서 열성으로 인정받는 인문학전공자들뿐 아니라 우성으로 인정받는 경제ㆍ경영전공자들도 불안하긴 매한가지다.

지난 1월 초 노동부는 청년실업자에 대한 정부적 고용지원 차원에서 '국가고용전략준비팀'을 만들었다. 올 6월에 국가고용전략을 확정할 이 팀의 위원으로 선정된 허재준 노동연구원 노동시장연구 본부장은 "스펙만 쌓고 인턴경험을 회피하려는 청년층의 태도와 기업 인턴제도 모두 조금씩 문제가 있다고 하면서도, 대학에서 취업지원제도를 강화하는 방안 또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스펙쌓기에 치중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 압박을 인정한 것이다.

◆청년 백수 차고 넘쳐=결국 이같은 스펙쌓기에 실패(?)한 대학생들은 독서실을 전전하며 자격증 취득을 위한 준비를 하거나 아르바이트 등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SERI)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청년일자리창출을 위한 3대과제'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03~2008) 청년 취업자 수는 약 52만 2000명 이나 감소했다. 청년 비경제활동인구가 전체 청년 인구 중에 차지하는 비율은 2003년 50.8%에서 2008년 55.2%로 약 4.4% 늘어났다. 청년 실업을 드러내는 지표들은 차고 넘친다.

통계청의 최근 5년간(2004~2008) '청년실업 및 고용 지표'에서도 이같은 사실은 입증된다. 통계 결과 청년실업률은 2004년 8.3%에서 2008년 7.2%로 개선됐지만 청년고용률은 동일한 기간 동안 41.6%에서 45.1%로 악화됐다.

청년실업률은 OECD 국가평균(12.4%) 보다 나은 수치지만 청년고용률은 OECD 국가평균(43.7%)에 비해 낮은 수치였다. 갈수록 생존에 적합한 개체가 줄어든 셈이다.

교육학자 데이비드 엘카인드는 그의 오래된 저서 '쫓기며 자라는 아이들(1987)'에서 "아이들은 부모의 성화와 경쟁을 조장하는 매스미디어의 탓으로 쫓기는 인생을 지속하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며 '생존을 위한 경쟁ㆍ겉도는 교육ㆍ쫓기는 아이들' 의 쳇바퀴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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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수 기자 kjs09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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