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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원칙이 세상을 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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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휴일 서울 잠실의 한 대형 백화점 명품 핸드백 매장에 들어가려는 손님 두어 사람이 매장 밖에 서 있습니다. 이곳은 다른 매장과는 달리 점원이 입장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몇 십 명은 족히 들어갈 제법 큰 매장에 손님이라고는 고작 20명이 조금 넘을까, 가방을 소개하는 점원도 9명이나 되었습니다. 통제하는 점원은 손님들에게 1대1로 제품을 안내하기 위해 입장 손님을 제한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백화점의 어느 곳도 이처럼 통제하는 점포는 없었고 손님 통제의 기준 또한 애매했습니다. 손님 통제는 얼마 후 해제됐습니다만 기다리던 손님들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이 백화점의 또 다른 점포, 그곳에선 의류 반품을 놓고 고객과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고객은 어제 구입한 옷을 반품해달라는 것이었고 점포 담당자는 구입해 입고 나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교환이나 반품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백화점 어느 규정에도 반품을 거절할 조항은 없었지만 점포 담당자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객장을 책임지는 백화점 직원이 온 뒤에야 의류를 교환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았으나 점포 담당자의 단호한 자세는 명분도 원칙도 없는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였습니다. 그 매장이 이 백화점에서 가장 매출이 많은 곳 중의 하나라는 설명이 더욱 의미 있게 들렸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공감할 수 없는 저들만의 기준으로 사회를 재단하려는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비록 이 대형 백화점의 경우뿐 아니라 일상생활이나 국가의 시책, 정치권에서도 공유되는 기준과 원칙을 무시하고 스스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불협화음이 일어나고 심지어는 대립양상까지 번지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매번 선거철이 되면 각 당마다 공천을 둘러싼 잡음이 불거집니다. 처음에는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원칙을 제시하며 구체적인 기준까지 만듭니다만 공천시일이 임박할수록 전략 공천 등의 포장으로 예외가 나오고 낙천한 사람들은 반발해 탈당하기도 합니다. 지난 총선의 ‘친박연대’가 대표적인 사례로 많은 후보가 한나라당 공천자를 따돌리고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습니다. 원칙과 기준을 폐기한 계파 싸움이 낳은 ‘사생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인사에서도 이러한 모습을 종종 봅니다. 장?차관이나 기관장 인사에서 측근인사라든지, 보은인사, 낙하산인사, 회전문인사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흔히 ‘인사는 만사’라고 인사가 조직을 운영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인데 원칙이 무너진 인사는 당장은 넘어갈 수 있으나 곧 조직의 비효율성이 증대되고 내부 분열을 획책하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낳습니다. 또 무리수가 나오다 보면 노사간의 대립으로 번져 힘겨루기가 장기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해 광복절을 기해 단행된 특별사면도 뒷말이 무척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정부는 정권 출범이후 화합과 동반을 위해 모두 34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을 특별사면?감형?복권? 징계사면 했다고 밝혔으나 대부분의 법조인들은 ‘원칙과 기준이 없는 사면’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판결이 확정된 지 겨우 두 달된 기업인이 있는가 하면 사회봉사활동도 채 끝나지 않은 사람과 비리혐의로 구속된 정치인도 많았습니다. 법치주의를 무력화함으로써 정권 스스로 민주주의 기반을 위협한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이와 같은 사면은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들추기 싫은 얘기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검찰이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수사의 원칙 부재 때문입니다. 수사를 하면서 혐의사실을 하루하루 기자들에게 브리핑한 것도 그렇고 일부 언론을 상대로 정보를 흘리는 모습 등은 표적수사라는 항간의 소문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형사소송법에서의 불구속 수사와 무죄추정의 원칙 등 수사의 기본이 지켜졌는지도 검찰 스스로 자성해봐야 할 사안입니다.



기준과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나 자기들만의 기준을 상대방에게 무리하게 적용했을 때 우리 사회에는 무리가 오고 혼란이 오며 곳곳에서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국가나 사회, 우리 생활 어디에서나 ‘원칙과 기준’이 존중되어야 할 이유입니다.



리더십의 권위자이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스티븐 코비 박사는 저서 <원칙중심의 리더십>에서 “우리가 세상일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이 통제한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만 이런 행동의 결과는 원칙이 통제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공을 던지면 아래로 떨어지는 자연법칙이 있듯이 인간세계에도 그들의 공통된 원칙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원칙은 내 것과 다른 사람 것이 다르지 않으며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대통령이나 농부에게 모두 적용되고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것도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원칙이란 지난 수세기 동안 위대한 문명과 사회를 거쳐 점진적으로 전해 내려온 자연법칙이자 지배적인 사회가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단기적인 성공이나 즉흥적인 성과를 위해 원칙을 파괴하고 기준을 자기들 멋대로 바꾸는 경우를 종종 본다며 이는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안철수씨도 <나의 선책>에서 “윈칙을 원칙이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상황, 손해를 볼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그것을 지키는 것에서 비롯된다”며 “힘든 상황에서도 원칙을 지켜 나간다면 그것이 언젠가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칙과 기준’은 백화점의 작은 매장에서부터 국가의 정책과 대사를 다루는데까지 지켜져야 할 덕목입니다. 한 치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우리의 오늘도 결국은 그 작은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은데서 비롯된 혼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갈수록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빈부와 이념 등으로 집단화되며 권력자의 한 마디가 사회의 기준을 바꾸는 현실을 직시하며 오늘날 우리가 추구하는 ‘공동선’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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