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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부의 무능력한 대북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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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자정이 다 돼서야 출입국 사무소에 들어선 김영탁 개성공단 지원단장은 정부성명을 급하게 읽어내려갔다.

"이번에 정부 대표단이 개성에 간 가장 큰 목적은 우리 근로자를 접견하고 신병인도를 하려했던 것이었다"로 시작하는 성명의 요지는 결국 북한에 억류중인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와 같이 못내려와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7차례에 걸친 사전협의를 거치면서 유씨에 대한 접견권 요구를 철회했었다. 우리정부의 설명만 들으면 22분만에 끝난 본 접촉에서 북한과 심도 깊은 논의가 오간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북한의 통보를 일방적으로 듣고온 게 전부다.

그나마 준비해간 우리 통지문도 읽어내려가다가 저지당하고, 나중에는 종이 문건도 다시 반환받는 수모도 겪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내부적 단속을 위해 벌이는 의례적인 퍼포먼스"라고 해명했지만, 수령을 거부당했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이번 접촉의 성격에 대해 "협상이 아니라 통지"라고 설명했다.

우리도 북한에 통지하고, 북한도 우리에게 통지하는 평등한 절차였고, 북한이 우리 주장을 받아들이건 말건 상관없는 접촉이었다는 말이다. 7차례나 사전협의를 벌이다 8시30분이 넘어서야 본 접촉이 이뤄지는 진통을 겪은 걸 고려하면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이다.

22분만에 끝나는 통지를 위해 그렇게 노력을 들였다는 건 상식에 어긋난다. 그리고 이렇게 어긋나는 상식은 '우리 정부가 아무 것도 못했고, 할 수도 없었다'는 실체를 가리려는 수사때문에 발생했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대북 퍼주기'를 비난했던 현 정부가 이제는 "근로자 임금 증액, 토지 임차료 조기 징수"같은 북한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원칙을 고수하겠다'던 정부의 정책은 결국 유씨 억류, 개성공단 악화, 대북굴욕이라는 결과만 남긴 셈이다.

박현준 기자 hjunpar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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