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전말은 2월 1일 용산참사 추모집회에 참여했던 시위대 중 '안티 이명박ㆍ촛불청' 깃발 아래 모인 일부 사람들이 명동에서 충무로 가는 도로를 점령하고 가두 행진을 벌이자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있던 경찰이 급하게 투입된 것.
당일 행사는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이들 일부 과격 시위대들에게서는 어떤 애도의 뜻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실제로 9시16분께 3000여명의 시위 본대열이 명동성당에서 자진해산하자 이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강경시위로 나갈 것을 주장했다.
그 후 이들은 명동에서 남산1호터널 방향 도로를 아무런 사전조치 없이 불법점거하고 충무로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시위대 자체 내에서도 통제가 안돼 통행 중인 차량과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진 것을 불을 보듯 뻔한 일. 그들은 그저 시위를 하기 위해 나온 시위꾼들에 불과한 모습이었다.
경찰의 대응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시위대가 남산1호터널을 지나 충무로에 다다랐을 때 시위대 뒤쪽에서 갑자기 진압을 시작했다. 도로 통제는 물론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었고 시위대를 막는 과정에서 일부 기자가 손에 골절상을 입고 카메라가 파손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용산참사의 책임이 경찰의 과잉진압에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무리한 진압은 시위대는 물론 지켜보던 시민들에게도 반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일부 시위대와 경찰의 무분별한 행동이 참혹한 죽음을 당한 용산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조해수 기자 chs9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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