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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 LG 한 푼 비결은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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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코치, 단장까지 거친 ‘LG맨’
10년 전 신장암 수술 철저한 건강 관리
1년 100권 다독 ‘야구계 독서광’
20년간 일기 쓰기, 최고 명문구단 목표

국내 야구계에서 가장 많이 걷는 사람은 누구일까. 프로야구 LG 트윈스를 이끄는 차명석 단장이다. 하루에 2만보 이상을 걷는다. 오전 9시에 일찍 출근한다. 잠실야구장에서 출발해 한강공원으로 나가 동호대교까지 다녀오는 코스다. 약 3시간 정도 걷고 돌아오면 정오가 된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회의를 한다. 이후 야구장을 점검하면서 또 걷는다. 차 단장은 "이젠 매일 하는 루틴이 됐다. 걷고 오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차명석 LG 야구단 단장은 "걸으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걷기는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라고 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차명석 LG 야구단 단장은 "걸으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걷기는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라고 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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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공원 걷기는 차 단장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그는 "옛날 현자(賢者)들도 많이 걸으면서 생각했다고 하더라. 야구단의 운영을 구상하기엔 걷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차 단장은 작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LG는 1994년 이후 29년 만에 통산 세 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섰다. 차 단장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

-평소 자주 걷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2만보를 걷는 것 같다. 3시간 정도 걸린다. 꼭 2만보를 걷겠다는 것은 아니다. 잠실야구장에서 동호대교를 갔다 오면 1만8000보가 넘는다. 야구장으로 돌아와서 계속 움직이다 보면 2만보가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거리로 따지면 15~16㎞ 되는 것 같다. 매일 아침 루틴이다. 원래 경기가 있으면 오후 1시 30분 출근인데 오전 9시 정도에 나온다. 동호대교를 갔다 오면 12시가 된다. 점심 먹고 일을 시작한다.


-걷기 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사실 운동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침에 걸으면서 오늘 경기를 어떻게 치러야 할지 생각한다. 여러 가지 방법들을 써봤는데 걸으면서 하는 게 머리가 명확해지고 좋아지는 거 같아서 선택하게 됐다. 운동 삼아 걷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걷는다. 아침에 그날 할 일과 경기에 대해서 분석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다. 걸으면서 하는 게 가장 잘 된다는 걸 느꼈다.


-한강을 자주 나간다고 들었다.

▲(웃으면서)야구장에서 나가기가 편하다. 접근성이 좋다. 한강을 걸으면 시야가 넓게 확보된다. 기분도 상쾌해지고, 도심보다 공기도 좋아서 한강을 많이 선택한다. 한강은 걷기가 굉장히 좋은 곳이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도 적당히 있다. 자연스럽게 한강을 선택하고 있다

-버킷리스트가 특이하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이 꿈이라고.

▲맞다. 그 생각은 10년 전에 했다. 2013년 신장암 수술을 했는데 치료를 받으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갈 생각이었다. 마치 성지순례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래서 죽기 전에 버킷리스트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넣었다. 지금도 변함은 없다. 근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려면 2개월 정도는 필요하다. 수술 이후 한 달 이상을 쉰 적이 없다. 정말 가고 싶다. 언젠가 단장을 그만두고 쉴 시간이 있다면 꼭 가겠다.

차명석 LG 단장이 잠실야구장 주변을 걸으면서 야구단 운영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차명석 LG 단장이 잠실야구장 주변을 걸으면서 야구단 운영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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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기 전까지는 술을 많이 마셨다. 굉장히 술이 셌다. 야구계에서도 잘 마신다고 소문날 정도였다. 지금은 술자리가 있어도 1차에서 마무리한다. 오후 10시면 끝난다. 잘 조절하고 있다. 콜라도 마찬가지다. 거의 끊었다. 수술 전에는 캔콜라를 하루 15개 먹었는데, 지금은 1년에 10개도 안 먹는다. 사실 탄산음료 중독이었다. 의사가 수술 다음 날 ‘먹지 말라’고 충고했다.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다 보니까 철저히 지키고 있다.


-프로야구 해설가 시절에도 많은 어록을 쏟아냈다. 야구계에서는 독서광으로 유명하다.

▲2001년 선수를 그만두고, 2002년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2004년에 코치가 되면서 ‘내가 지식이 부족하거나 선수를 잘못 가르치는 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책을 선택하게 됐다. 벌서 20년이 넘은 것 같다. 1년에 100권을 본 적도 있다. 단장이 되고 나선 절반으로 줄었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단장은 다독보다 정독이 맞는다고 봤다. 과거에는 많이 읽는 쪽으로 집중했다면 단장 이후엔 정독으로 바꿔가고 있다.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지다 보니 양은 줄었다. 그런데 정독도 괜찮은 것 같다.


-야구 이외의 서적을 보는 것이 야구단 경영에 도움이 되나.

▲엄청난 도움이 된다. 야구를 야구로만 풀면 항상 막힌다. 근데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면 생각하지도 못한 답들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지금까지도 책을 이기는 걸 못 봤다. 책에서 해답을 얻고 있다. 특히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좋아한다. 힘들 때마다 읽는다. 동심을 잘 표현한 책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뭔 줄 알아.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야’라는 명언을 좋아한다. 지도자 생활을 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지도자도 기술이 먼저가 아니라 사람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 ‘어린왕자’를 읽은 것이 코칭에 굉장한 도움이 됐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어린 왕자를 추천해 주고 싶다. 어렵지 않고, 명언들도 많아서 읽는 재미가 있다.


-20년 가까이 일기를 쓰고 있다고 들었다.

▲18~19년 됐다. 자꾸 잊어버리니까 기록을 하게 됐다. 일기는 90%가 자기반성이다. 일기에 자기가 잘났다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이때는 내가 실수했고 이런 방향으로 갔으면 어땠을까’라는 반성이 들어간다. 일기를 쓰고 나면 마치 고해성사를 한 느낌이 든다. 직접 수기로 작성한다. 일기장이 아주 많아 쌓아둘 정도다. 그걸 볼 때마다 흐뭇한 마음이 든다. 예전에 조정래 작가가 원고지로 만장 이상을 써서 어깨가 탈구가 됐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분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저도 써보니까 컴퓨터는 맛이 안 난다. 손으로 쓰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작년 팀이 2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는데.

▲1990년 창단 때 우승을 했고, 1994년에도 또 정상에 올랐다. 1990년대 계속 좋은 전력으로 상위권을 유지했는데 그때는 우승을 너무나 쉽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매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봤다. 2002년에 한국시리즈에 올라가서 삼성한테 지고 나서 한 10년간 포스트시즌을 못 올라갔다. 그때 구단이 멀리 보고 정책적으로 계획을 잡았어야 했는데 너무 눈앞의 성적만 보고 운영한 것이 문제였다. 성적이 안 나기 시작하면서 계속 스텝이 꼬이게 됐다. 아랫돌을 빼서 위를 막고 윗돌을 빼서 아래를 막는 방식을 취했다. 해마다 감독들도 중도 경질 아니면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했다. 선수 육성 측면에서도 구단의 정확한 방향성 없다 보니 우왕좌왕한 꼴이다.


-해설가로 활동을 하다가 LG의 러브콜을 받았다.

▲LG가 8위까지 떨어진 2018년엔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일했다. 시즌 종료 후 월드시리즈 중계를 위해 미국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LG그룹의 고위층에 계신 분께서 단장직을 제의했다. 8등 팀을 맡고 싶지는 않았지만 팀에 대한 애정이 강했다. 세 번 고사하다가 결국 단장에 부임했다. 처음엔 눈앞이 캄캄했다. 그때 걱정 때문에 잠도 못 잘 정도였다. 어려운 시기를 거친 이후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올라갔고, 5년 통산 최고 승률을 달성했다. 또 5년 만에 우승에 성공하면서 성적면에서는 최고의 성과를 올렸다.

차명석 LG 단장은 "성적에 맞는 팬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명문구단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고 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차명석 LG 단장은 "성적에 맞는 팬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명문구단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고 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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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강해진 원동력은.

▲메시지 전달이다. 류중일 감독하고 우리 팀이 가야 할 방향을 공유하면서 향후 우승할 수 있는 팀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부임 이후 26명을 내보내면서 팀 개편부터 시작했다. 보통 감독들은 선수의 입대에 반대한다. 당장의 성적을 내기 위해서다. 코칭스태프를 이해시키고 26명을 보내면서 전면 물갈이했다. 그러면서 팀이 활기차게 됐고, 첫해 4위를 하면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계속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힘을 합치니 구설수도 없었다. 부임하고 과감히 트레이드도 했다. 팀에서 기회를 받지 못하는 선수들을 트레이드했다. 위험 부담은 있었지만 큰 방식으로 접근했다. 원래 비즈니스 관점으로 보면 다른 팀에 가서 잘할 것은 선수는 절대 트레이를 하지 않는다. 트레이드를 통해 젊은 선수를 받아왔다. 나중에 우리 팀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 대표적인 예가 함덕주다. 함덕주가 없었으면 작년 우승을 못 했을 수도 있다.


-선수들에게 강조한 점은.

▲조직은 다양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상명하복식으로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위에서 얘기하면 ‘예’, ‘알겠습니다’, ‘아닙니다’ 등 이 정도 대답하다 보니 소통이 안 됐다. 근데 조직은 다양성이 없으면 언제든 썩는다. 조직은 일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일 말고 다른 것을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성격이 강한 사람도 필요하지만 유한 사람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게 하나로 합쳐져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단장으로 왔을 때 선수단이 너무 경직돼 있었다. 그걸 풀려고 굉장히 노력했다. 단장이 선수들 옆에 지나가도 편안히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올해는 10개 구단의 전력이 평준화됐다. 포스트시즌에 올라갈 것 같은 팀을 꼽는다면.

▲기아와 두산이 좋다. KT도 탄탄하고, 한화도 전력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국내로 복귀한 류현진의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한화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류현진이 복귀하면서 메기 효과가 클 것 같다. 류현진의 성적이 좋지 못해도 나머지 선수들이 좋아질 확률이 높다. LG를 우승후보라고 얘기하는데 불안한 점도 있다. 약한 부분도 있지만 염경엽 감독과 함께 부딪쳐 보겠다.


-이제는 도전을 받는 입장이다. 올해 기대하는 선수와 목표는.

▲아무래도 신인들을 주목하고 있다. 손주영과 이상영이 분위기를 잡아줘야 한다. 젊은 선발투수로서 제 역할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신민재는 작년에 2루수 역할을 잘해줬는데 좀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5월까지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60게임 중에서 플러스 5에서 10 사이에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 프로팀인 만큼 2연패를 노리는 것은 당연한 목표다. 우리가 명문구단의 초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명문구단이란 성적이 전부는 아니다. 성적에 걸맞은 팬서비스, 마케팅 등이 좋아져야 명문구단으로 가는 것이다.





노우래 기자 golfm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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