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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엄근진’ 보수정권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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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엄근진’ 보수정권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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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사장과 사원 간엔 긴장감이 있다. 그런데 사원이 속으로 사장보다 꺼리는 인물은 자기 부서 ‘엄근진(엄격·근엄·진지)’ 부장이다. 이 유형의 부장은 권위적이다. 회사가 자기 것인 양 주인의식마저 투철하다. 부원들의 노동력을 은근히 쥐어짜고 비용 절감에 매진한다.

이번 총선에서 보수정권은 참패했다. 직장인 유권자가 보수정권하면 떠올리는 것이 ‘엄근진 부장’ 비슷한 이미지다. 참패의 주된 원인도 이 ‘왠지 싫은 비호감’에 있다.


한국은 유교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한편으로 엄근진 배격이 한창이다. K-팝과 TV 연예·오락 프로그램에서 시작돼 확산 중이다. 보수 ‘조선일보’도 “엄근진은 버렸다…재벌을 ‘형’이라 부르는 세상”이라는 타이틀을 뽑을 정도다. 내가 신문사에서 일할 때도 국장 주재 회의에서 “‘엄숙주의’를 기사에서 빼라”라는 주문이 자주 내려오곤 했다.

탈엄숙주의는 사회문화적 대세인데, 보수정권만 엄숙주의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대형 국토개발, 거대담론에 집착한다. 수도권광역철도(GTX) 연장,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신도시 건설, 반도체단지 구축, 국회 이전 등 공약이 토건 기반이다. 이 개발 약속을 쏟아낸 대부분 지역에서 여당은 졌다.

정작 표심을 움직인 건 ‘작고 감정적인 것’이었다. 여당은 ‘여성가족부’를 ‘인구부’로 바꾸겠다는 공약으로 20~30대 여성 유권자의 비호감을 유지했다. 상대(여성)가 극구 싫다는 걸 밀어붙이면서 상대에게 표를 달라고 했으니 표가 나올 리 없다. 여성들은 이번 선거에서 역대급으로 여당을 외면했다.


여가부 건은 돈이 들지 않고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인구문제 부처의 명칭에 여성이 들어가면 어떤가? 여권은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는 거대담론에 몰입돼 여성 국민을 가르치고 이겨 먹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여성의 걱정거리인 유리천장에 무관심하고 여성을 고립시킨다는 인상을 줬다.


진보는 기득권·서민 대립 구도를 고수한다. 보수는 유연성이 강점이었다. 누구도 사회 양극화를 해결하지 못한다. 유연성은 ‘문제해결 능력’이 아니다. ‘노동자 급여도 올려줘서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능력’이다. 현 보수정권은 유연성을 잃었다. 아니다 싶으면 여가부 폐지를 유연하게 접어야 한다. 그것은 보수정권이 엄근진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야당이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주자고 했을 때 여당 경제전문가들은 예의 ‘포퓰리즘’ ‘국가채무’ 논리로 반대했다, 이런 여당 모습은 ‘부원들에게 비용 아끼라고 잔소리하는 부장’ 같았다. 여권이 절실했다면 4조원이 대수인가? 사람에겐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정서, 허술함, 융통성, 인간미라는 게 있다.


여당에선 “중도성향 김재섭을 당 대표로” “야당 인사를 총리로” “야당 대표와 영수회담을” 같은 주문이 나온다. 이 해법도 거대담론이다. 유권자는 보수주의를 심판한 것이 아니다. 보수정권은 하던 대로 보수적 스탠스를 유지하면 된다. 보혁대결은 하루아침에 해소되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원씽’은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것은 단순함”이라고 했다. 보수정권은 소통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대통령 등 지도부는 기자회견도 자주 열고 질문을 다 받아주어야 한다. 실수에 자비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언행이 상식에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 공중과의 직접 소통으로 국정 동력을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과 같은 편으로 느껴지게 해야 한다. 부원은 엄근진 부장을 자기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허만섭 국립강릉원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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