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연극 '아들'은 미세하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아무도 모르게 금이 가고 있는 거울처럼 이야기가 전개된다.
연극의 종반부, 결국 '와장창! 쿵!' 하고 거울이 완전히 박살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진정하고 보니 거울은 온전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산산조각나 파편이 흩어져 있을줄 알았는데 바닥은 깨끗하다. 다만 거울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을 뿐이다.
처참하게 조각난 파편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있는 거울은 극 중 아빠 '피에르'의 마음 같다. 삶은 그렇게 조금씩 찢어지고 갈라지는 마음의 균열을 어떻게든 부여잡고 버티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임을 피에르는 이미 알고 있다.
삶은 누구에게나 버겁다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알기에, "사는게 버겁다"고 한 아들 '니콜라'의 말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은 아닌지,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니콜라는 아직 그 삶을 알기에 너무 어린 나이. 좀더 시간이 지나면 깨지고 상처받으며, 그 상처가 다시 아물기를 기다리고, 더 단단해질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을텐데… 니콜라는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리고 삶을 선택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삶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삶은 왜 이렇게 또 버거운 것인지…
연극 '아들'은 이혼한 부모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10대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진부한 소재지만 진부하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이 연극에는 있다. 니콜라의 마음에 조금씩 생겨나는 균열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공연이 끝나고 이토록 큰 먹먹함이 남는 연극은 꽤 오랜만이다. 올해 본 연극 중 첫 손에 꼽을만한 작품.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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