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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칼럼] 악플의 생애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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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칼럼] 악플의 생애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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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꽤 됐지만 아직 나도 나를 잘 모른다. 그저 이런저런 세상사에 관여하고 있다. 여의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질 때도 있지만 주 대상은 연예인이다. 열애설을 부인하면 거짓말이라 비난하면 되고, 인정하면 부적절한 관계라 으름장 놓으면 된다. 연예인은 내게 그저 심심풀이 땅콩이다. 그런 연예인이 주체적인 생각을 하다니 말도 안 된다. 소신 발언을 하는 연예인을 골라 '관종'이라고 하거나 나서지 못하도록 겁박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한번 찍은 놈은 몸이 녹아 없어질 때까지 찍는다. 잘하면 잘한다고 욕하고 못하면 못한다고 욕하면 된다. 사실 여부는 상관없다. 부동산 정책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


사실 나를 양으로 음으로 키워주는 분들은 따로 있다. 사람들은 그분을 언론이라 부른다. 그분이 주목하기 전의 나는 한낱 쓸모없는 욕설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분은 모래밭에서 진주를 발견하듯 나를 찾아주신다. 핫한 뉴스라는 이름 아래 나는 공식적인 여론으로 화려하게 무대에 등장한다. 나는 빛이 났고 심심풀이 땅콩들은 사회의 문제아로 추락한다. 나는 사회를 비판하는 의식 있는 존재이고 심심풀이 땅콩들은 개념 없는 원인 제공자일 뿐이다. 문제는 심심풀이 땅콩이지 내가 아니다. 그러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을 때 가만히 있어야 했다. 연예인의 소신이란 목숨 걸고 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게 바보다.

심심풀이 땅콩은 나보다 언론 때문에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 언론에 편견과 오해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도, 본인을 예뻐해달라고 애처로운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고마우신 언론은 여전히 나만 예뻐하신다. 심심풀이 땅콩들의 목소리는 잘 안 들리시는 것 같다. 어쩌면 그분도 심심풀이 땅콩 장사에 재미가 붙었거나 돈이 되는 일로 여긴다고 생각도 했다. 돈 때문인가 배신감이 들기도 하지만, 괜찮다. 오늘도 나를 찾아오신다. 사실 잘난 척일까 봐 말 안 하려 했지만 나는 매일 뉴스에도 나오는 고정 출연자다.


여성 연예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상이다. 만만해서 아무렇게나 말하기 좋고 힘없는 여성이라 공격하기도 더 좋다. '아니면 말고'가 더할 나위 없이 잘 통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여성 연예인이 가장 인기가 많다는 조사를 해간 사람도 있다. 임신설, 낙태설, 열애설, 결혼설, 성형설 등 오래도록 잘근잘근 씹을 수 있는 소재도 많다. 나는 사실 죽은 사람에게 '얼굴도 못생긴 게, 지옥에나 가라'라고 한 적도 있다. 어떤 분들은 나보다 혐오가 문제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함께 몰려다니는 '절친' 관계다.


내 생애에서 껍데기를 벗고 나갈 때가 있다. 누가 죽었을 때다. 가끔 나 때문에 힘들다거나 우울증을 겪는다는 사람이 있어도 내 문제는 그냥 잘 넘어간다. 그런데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 그의 죽음에 모두가 나를 지목하고 있다. 내가 그를 죽였다고 한다. 이 순간만큼은 나를 키워준 고마우신 분들도 나와의 연결고리를 떼어내신다. 내가 여론이라는 이름에서 악플로 새롭게 명명되는 순간이다. 이 순간만큼은 심심풀이 땅콩은 가녀린 희생자로, 나는 극악무도한 살인마로 지목된다.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한다. 안 되겠다. 이럴 땐 잠시 잠수를 타야 한다.

아무래도 이번엔 심상치 않다. 나에게 명찰을 달거나 처벌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자는 사람들이 푸른 지붕 집에 달려갔다고 한다. 여의도 분들도 화가 나셨다고 한다. 잠시 당황스럽지만, 차분해지자. 언제나처럼 곧 그러다 말 거다. 11년 전에도 비슷했다. 결국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으로 그렇게 넘어갔다. 그때까지 잠시만 기다리자. 그러다 보면 나를 여론이라 불러주는 고마운 분들이 다시 오실 거다. 나를 모래밭에서 주워 진주처럼 빛을 내주고 생명력을 넣어주실 고마운 분들이 꼭 오실 거다. 나는 악플이 아니다. 나는 여론이다. '아 윌 비 백'.


윤성옥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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