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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라이브리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세계 최고 권위 이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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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콩쿠르 '바이올린서 강점'…임지영 2015년 1위 등 亞 강세
공정성 위해 응모자 DVD 제출 요구…2차예선 통과 12명 외부와 격리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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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끝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스텔라 첸(미국)과 준우승자 티모시 추이(캐나다)가 지난 27일 창원시향 협연을 시작으로 통영 국제음악당(31일), 인천 엘림아트센터(9월4일), 서울노원문화예술회관(5일), 광주 아시아문화전당(6일)에서 입상자 투어를 연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보통 '세계 3대 콩쿠르(쇼팽·차이콥스키)'로 분류되지만 최상의 권위를 인정받는 부문은 바이올린이다. 경연의 모태가 벨기에가 낳은 '바이올린의 전설', 외젠 이자이를 추모하는 취지로 1937년 시작된 이자이 바이올린 콩쿠르다. 전통적으로 바이올린 부문에서 한국(강동석 1976년 3위·배익환 1985년 2위·임지영 2015년 1위)을 비롯한 아시아 연주자들이 탁월한 성적을 거뒀다. 올해 대회 3위(스티븐 김), 4위(샤넌 리)도 모두 아시아계 북미 국적이다. 2009년 우승자 레이 첸(대만계 호주 국적)이 2010년대를 화려하게 수놓으면서 대회 권위도 이어진다.

반면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부문의 위상은 냉전 시기에 비해 위축됐다. 과거엔 에밀 길렐스(1938년), 발레리 아파나시예프(1972년)를 비롯한 다수의 소련 출신이 서방에 진출하는 통로였다. 특히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는 쇼팽(1955년 2위), 퀸 엘리자베스(1956년 우승), 차이콥스키(1962년 공동우승)에 모두 입상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배출한 피아노 우승자의 면면과 역량은 지난 세기의 결과와 뚜렷하게 대비된다. 임동혁은 쇼팽(2005년 공동 3위), 차이콥스키(2007년 공동4위)에 입상했지만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선 심사의 불공정을 이유로 3위 수상을 거부했다.


1988년 시작된 성악 콩쿠르는 2011년 홍혜란, 2014년 황수미가 우승하면서 국내에 거론되지만 여타 입상자들 가운데 성악계를 주름잡는 세계적 스타는 나오지 않았다. 대다수 저명 오페라하우스의 캐스팅 감독들에겐 직접 본인 눈으로 확인하는 오디션이, 아직 소리가 여물지 않은 20대 참가자를 대상으로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콩쿠르 결과에 우선한다. 2008년 조은화, 2009년 전민재가 우승한 작곡 부문은 2012년까지 열렸고, 2017년 시작된 첼로 부문 입상자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21세기 양질의 콩쿠르로 살아남는 법은 두 가지다. 입상자에게 공연 기회를 대폭 제공하거나 상금을 올리는 법이다. 전자는 전통적 명문 대회가 추구하는 길이고 후자는 신흥 클래식 강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국, 중동에서 각론을 모색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대회가 실시간 스트리밍 중계를 실시한다. 그러나 참가자를 거르는 스크리닝 작업에는 여전히 대외 감시가 미치지 못해 참가자들은 심사용 영상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

201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우승자 스텔라 첸 (C) Queen Elisabeth Competition

2019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우승자 스텔라 첸 (C) Queen Elisabeth Compe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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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은 여타 경연과 구분되는 특수한 절차로 공정성을 담보하고자 한다. 본선 자동 출전권 대신 기본적으로 응모자 전원에게 DVD 제출을 요구한다. 대회 평균 약 200명이 내놓는 완성된 자료 가운데 무려 80명을 1차 예선 통과자로 선발한다. 온라인 감시가 가능한 영역에 최대한 많은 인재를 노출해 심사위원들의 불공정 담합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장치다. 유서 깊은 보자르홀에서 시작되는 경연 과정을 판정하는 심사위원 숫자도 약 13명으로 경쟁 대회보다 많다. 대법관 숫자를 늘리듯 위원 사이의 카르텔을 견제하는 방편이다. 참가자 가운데 제자가 있으면 해당 판정에서 제척된다. 1차 예선 과제곡 가운데 무작위로 무대 연주곡을 지정해서 돌발 상황에 대비하는 참가자의 순발력과 담력을 사정한다.

1차 예선을 통해 선발된 24명 참가자는 또 다른 과제곡의 실연을 수행하면서 음악적 완성도를 어디까지 높였는지 심판 받는다. 협주곡목은 추첨으로 결정되고, 악단과 연습 시간은 모두 같은 조건으로 주어진다. 형평을 감안한 조치로 연습 시간을 확인하는 요원이 상시 대기한다. 주어진 과제곡을 단기간에 얼마나 음미했는지, 오케스트라와의 소통에 얼마나 적극적인지, 연주의 기본기와 정확성에 초점을 맞춰 판정한다. 악보에 대한 이해도뿐 아니라 솔로 부문에서 얼마나 독자적으로 소리를 내는지가 관건이다. 다양한 방식의 테스트를 통해 퀸 엘리자베스는 심사위원과 관객이 참가자의 개성을 확인할 여지를 최대한 확보하고자 한다. 직업 연주자에게 필요한 가치가 자신감과 개성이란 점을 심사로 강요한다.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첫 한국인 바이올린 우승자 임지영 (C) Queen Elisabeth Competition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첫 한국인 바이올린 우승자 임지영 (C) Queen Elisabeth Compe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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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예선을 통과한 12명의 참가자는 1주일 동안 엘리자베스 대학 기숙사에 사실상의 감금 생활을 통해 외부와 격리된다. 오케스트라 연습을 제외하면 전화나 컴퓨터의 접촉이 금지된다. 2015년 해당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담은 영화 '파이널리스트'에는 임지영, 이지윤, 김봄소리의 모습이 보인다. 최종 결선자들에게 현대 과제곡이 공통적으로 주어지고 일주일 만에 연주를 완성해야 한다. 초견 능력을 결승에서 검증 받으며 협주곡을 준비하는 과정은 체력적으로도 가혹하다. 긴 심사를 통해 탄생한 우승자에게 권위를 실어주기 위한 대회의 노하우가 담겼다.


지금도 콩쿠르가 스타 탄생의 산실인지는 의문이다. 미스 터치가 빈발했지만 긴장을 자아내는 대범한 해석과 빠르면서 실수 없는 탄탄한 연주 사이에서 등위를 매기는 콩쿠르 심사위원의 결정은 뻔하다. 콩쿠르와 예술세계는 서로 별개 영역인 점을 심사위원들부터 절감한다. 콩쿠르 우승이 세속적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 점은, 역설적으로 경연 심사의 정합성을 돌아보게 한다. 1990년 영국 리즈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아르투르 피사로의 명성보다, 예선에서 베토벤 '디아벨리' 변주곡을 신들린 듯 연주하고는 다음 곡을 치다가 "더 이상 연주할 수 없다"고 경연장을 나가버린 표트르 안데르셉스키의 진심을 후대 음악시장은 더욱 각별히 대우하는 점도 콩쿠르 지망자라면 상기할 만 하다.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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