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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타다' 끝나면 혁신도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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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 1. 약속한 택시가 도착한다. 문이 열린다. 좌석에 앉으니 다시 문이 닫힌다.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넉넉한 실내에 감미롭게 울려 퍼진다. 차 안은 청결하다. 은은한 향기마저 풍긴다. 컴퓨터를 꺼내 든다. 와이파이가 연결된다. 메일을 검색한다. 하루 종일 쓴 핸드폰은 차 안에 구비된 잭으로 배터리를 보충한다. 좌석을 조정해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잠을 청한다. 어느덧 집 앞이다. 기사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도착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니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으로 결제 금액이 뜬다.


상황 2. "수고하십니다. XX아파트 부탁합니다." 기사분이 묻는다. "XX아파트가 어디죠?" 분명 핸드폰도 있고 내비게이션도 있다. 그러나 말해준 행선지를 찍을 의사가 없다. "올림픽대로로 해서 일단 5호선 고덕역으로 가시죠." 밀폐된 좁은 차 안에서 유쾌하지 않은 냄새가 나를 공격한다. 문을 조금 열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눈을 붙이고 싶지만 포기한다. 택시가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핸드폰 충전기 있으신가요?" 백이면 구십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물었더니 역시 없다.

첫 번째는 '타다' 서비스이고 두 번째는 일반택시다. 택시를 이용해야만 한다면 당신은 어떤 상황을 맞고 싶은가. 당연히 첫 번째다.


지난해 10월 서비스를 시작한 타다가 7개월 만에 회원 수 60만명을 돌파하며 인기 몰이 중이다. 서비스 지역이 적고 차량 수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재탑승률이 89%다. 왜 그럴까? 이유는 단 하나. 기존 택시 고객들이 견뎌내야 했던 불만과 불편을 단칼에 해결해줬기 때문이다.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에 대한 수요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도대체 이 수요는 왜 생기는가? 기존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택시에 대한 소비자 신뢰는 바닥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택시요금이 오르면 서비스가 개선되리라는 믿음도 없다. 서울시가 실시한 택시 서비스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86.5%가 요금이 올라도 서비스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타다는 이러한 소비자 불신을 먹고 자란 것이다. 소비자들이 오랫동안 고대해온 서비스 혁신을 택시업계가 아닌 타다가 실현한 것이다.


타다의 혁신은 이제까지 없던 최첨단 신기술을 이용한 것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간단한 자동 배차 솔루션과 결제 시스템에 더해 월급 기사제로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했을 뿐이다.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전체적인 혁신의 모습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혁신일 수도 있다.


그런 타다가 위협받고 있다. 택시업계가 수차례의 시위 끝에 카풀 서비스를 실효적으로 중단시킨 데 이어 이제 '타다 아웃(Out)'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개인택시의 생존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택시업계의 생존권 위기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소비자의 신뢰를 잃었는데 어찌 생존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그저 연명을 도왔을 뿐이다. 6년 전 우버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을 때 그랬다. 택시업계가 반발하고 서울시와 정부가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주면서 무산됐다.


타다는 이미 택시 서비스의 새로운 기준을 시장에 제시했다. 60만명이 향상된 서비스를 경험했다. 타다를 불법화하거나 축소시키려는 어떠한 노력도 시장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럼에도 물리력이 강한 세력이 이기는 게 한국이다. 타다의 생존 여부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이유다. 몇 차례 더 시위하면 정치권이 나서서 카풀처럼 이상한 타협을 주고받을지 모른다. 만약 정부가 타다와 같은 작은 혁신마저 보호하고 지켜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혁신 성장을 입에 올려서는 안 될 것이다. 혁신 성장은 용기다. 옛 질서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소비자들에게 검증된 혁신까지 지켜내는 용기가 없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강영철 한양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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