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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결/주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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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도 물결이 있었구나

썰리고 밀려온 심장의 박동을 삼키고 있었구나

저 해안선의 모래들처럼 함부로 온몸을 맡기고

밤새 달빛에 출렁인 적도 있었구나

나직이 부르는 너의 이름에 수줍은 귀를 움츠리며

천상의 밧줄을 당겼겠구나

아 여기쯤

밤새 격랑의 저 검은 불안들이 벽으로 몰아쳐

빗장을 걸고 지키던 상처의 흔적이구나

대패질에 몸을 맡긴 나무야

묘비명 같은 옹이 자국으로 동그랗게 쳐다보는 나무야

나도 너와 다르지 않아서

지금도 물결로 일렁이고 있단다

방파제를 넘은 해일처럼 난파선으로 쓸리기도 하고

등대 같은 희미한 불빛으로

노동의 힘든 노를 젓기도 한단다

옹이투성이의 가슴이 너를 닮았구나

우리가 등을 맞대고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동안

결 하나씩을 인쇄하고 있었구나

세상의 결들이 속으로 새겨지고 있었구나


[오후 한 詩]결/주강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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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구나. 나무에 등을 기대고 있으면 왜 그렇게 따스했는지 이제야 알겠구나. 그리고 왜 또 그렇게 울컥했는지도. 나무야, 네가 "밤새 달빛에 출렁"였듯 나도 어느 한 시절 한없이 출렁였고, "나직이 부르는" 입술에 "천상의 밧줄을 당겼"듯 나도 한 사람을 위해 기도를 했었단다. "방파제를 넘은 해일"에 나도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때론 "빗장을 걸고" 상처만 바라보던 때도 있었고. 나무야, "우리가 등을 맞대고 멀어지고 가까워지는 동안" 내가 그랬던 것처럼 너도 "세상의 결들이 속으로 새겨지고 있었구나". 그랬구나. 당신 또한 그랬구나. 이 밤 "등대 같은 희미한 불빛" 속을 옹이투성이로 걷고 있는 당신 또한 저 한 그루 나무와 같아서, 당신 또한 나와 다르지 않아서 "지금도 물결로 일렁이고 있"구나.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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