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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손톱 깎는 우주/이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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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에 가면

손톱을 깎으리


게르 문 젖혀 놓고

쪽의자 내어 기대 놓고

쪽의자에 풍성히 앉아

손톱을 깎으리

손톱 깎고 갈 여유도 안 났지만

손톱 길어 와도 내심 내버려 뒀지

몽골 초원에 가 깎으리

우주의 일처럼 하리 했지


열 개 손톱 하나하나 똑, 똑,

열 손가락 하나하나 쫙, 쫙,


광막한 고원이

광막한 고산 초원이

내 손을 사진 찍고

내 손톱의 똑똑한 소리를

완전 똑똑히 감상한다네

우주 광활에 새겨 붙인다네

끝없이 벗은 모래 산

두정(頭頂)에 정지한 태양

휘달리는 건(乾)바람

저 무주(無住)의 너무 많은 구름

흰 구름 인류의 유전(流轉)


알 수 없이 흘러온 몸 하나

이 모든 광막과 광활에 구워져

동체 녹고 형체 없고

열 손가락 손톱 깎는 소리만

빼빼 마른 낙타풀같이

툭툭 꺾여져 떨어지는 낙타풀같이

억년을 흐른다 흐를 것!





■아무리 몽골에서라고 해도 손톱을 깎는 게 "우주의 일"이라니, 이건 좀 지나친 과장이 아닐까.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니 난 왜 이런 트집이나 잡고 있을까 싶어 심히 참담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말하자면 나는 왜 이제껏 한 번도 손톱 깎는 것을 정녕 "우주의 일처럼" 행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일까. 마찬가지로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것을 천지간 생동의 무늬로, 문득 손을 뻗어 허공을 어루만지는 잠시를 억년 동안 벌어지고 있는 은하의 일로 여기지 못했던 것일까. 단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서라고 변명하고 말기엔 내 자신이 스스로 하찮고 가여울 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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