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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추락과 착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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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추락과 착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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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아직까진 괜찮아, 아직까진 괜찮아, 아직까진 괜찮아. 추락하는 건 중요한게 아냐. 어떻게 착륙하느냐지."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이 1995년에 만든 영화 '증오'는 이런 대사로 시작한다. 50층 건물에서 추락하는 남자가 이렇게 중얼거린다며….
1994년 프랑스에서 정부가 이민자 차별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난다. 시위 진압 중 경찰의 실수로 시리아 이민자 청년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카소비츠 감독은 이에 분노해 영화를 만들었다. 증오는 1997년 국내 개봉했다. 영화 속에서 흑인, 아랍계 청년과 어울리는 반삭의 반항기 가득한 유태계 프랑스 청년 빈쯔 역할을 한 주인공이 뱅상 카셀이었다.

20년 전 반항기 가득한 이미지를 기억하고 있는 탓에 '국가 부도의 날'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로 나온 뱅상 카셀은 낯설었다. 배우가 영화 속에서 전혀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20년 전 철부지가 이제는 군림하는 존재로 변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아마 이 영화가 20년 전 외환위기가 우리네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는가를 보여주는 영화였기 때문에 뱅상 카셀의 이미지 변신이 강하게 느껴졌으리라.

외환위기가 우리네 삶을 얼마나 바꿔 놓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가 허준호다. 그는 선량한 공장주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부려먹는 공장주로 바뀐다.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아들과의 통화에서 절대 그 누구도 믿지 말고 너만 믿으라고 충고한다.
1997년 겨울 문턱,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그 시간에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동아리 사람들과 학교 앞 호프에서 맥주를, 아니면 좌판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군대를 제대한 후 만난 새내기 후배들은 도서관을 점령하고 있었다.
사실 증오를 제대로 보지 못 했다. 대학생이 모름지기 이런 의식(?) 있는 영화도 봐야지라는 생각에 선택했으나 첫 장면에서 '21세기가 코 앞인데 흑백 영화라니…'라는 푸념과 함께 이내 잠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다만 50층에서 추락하면서도 착륙을 꿈꾸며, 아직까진 괜찮다고 반복하는 그 메시지는 강렬하게 남았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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