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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분열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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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터지고야 말았다. 미국의 얘기다. 한 백인 남성이 유대인 교회에 총을 난사하여 사상자 열일곱 명을 낸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주말의 평온함을 순식간에 공포로 몰아버린 이 사건은 유대인에 대한 극도의 증오가 빚어낸 범죄로 진단되고 있다.

총기소지가 자유로운 미국에서 그간 일탈행위자들의 우발적 범죄는 드물지 않았다. 고교나 대학에서 동료 학생들이나 교사를 상대로 총기를 난사한 사건을 국내 미디어가 보도한 것만도 여럿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나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집단에 초점을 맞춘 적개심이 사건의 본질이어서 '분열의 시대'의 신호탄으로 느껴진 까닭이다.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는 범행을 저지를 당시 "모든 유대인은 죽어야 한다"고 외쳤다고 한다. 또 총기 난사 수시간 전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비영리단체인 '히브리이민자지원협회(HIAS)' 웹사이트를 게시하고 "HIAS는 우리 국민을 죽이는 침략자들을 들여오길 좋아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내 국민이 살육당하는 걸 지켜볼 수 없다"고 적었다고 한다. 그간의 무차별 총기난사 사건들에서 보여주었던 직접 원인의 연관성이 사라진 대신 히브리 이민자와 미국민을 가르고, 그들(가해자)-우리(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집단 의식이 드러나고 있다. 총기소지증을 가지고 있고, 지난 20여년간 최소 여섯 건 이상 총기를 구매했음에도 교통위반 기록 외에 아무런 범죄 사실이 없을 정도로 깨끗한(?) 이력의 소유자가 이런 극단의 범죄를 저지르게 된 근저에 바로 그릇된 집단의식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은 편견을 낳고 이는 차별행동을 유발하게 된다. 더욱이 요즘 세상을 지배하는 소셜 미디어는 특정 집단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확성기가 돼 고정관념들을 더욱 널리, 크고, 강하게 전파시키기에 급급하다. 면대면 커뮤니케이션에서 나타나는 특징인 '끼리끼리 커뮤니케이션'이 소셜 미디어가 이끄는 사회연결망 속에서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을뿐더러, 익명의 자유를 틈타 더욱 험하고 책임 없는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 술 더 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오프라인 세상보다 비슷한 집단을 접촉하기에 더욱 용이하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역시 극우인사들이 몰려 있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 계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사용자들이 올린 반유대주의 성향 게시물도 자주 퍼왔다고 보도는 전한다.

문제는 이런 분열의 시대의 조짐이 우리 사회와도 무관해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1970년대 지역을 중심으로 쪼개지다 1990년대 진보ㆍ보수의 벽을 넘어 이제 생물학적 성의 분열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느낌이다. 가장 자유로워야 할 대학 캠퍼스에서도 남녀 학생들 간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재판결과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기는커녕 여성ㆍ남성과 관련된 주제라면 아예 입에 올리기를 꺼리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오프라인 세상에서는 대화가 실종되고 디지털 세상에서는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끼리만 똘똘 뭉쳐 있다. 더욱 불행한 것은 같은 집단 내에서는 극단적인 견해가 선호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부 철학이 실종된 미디어들까지 가세해 이런 극단적 견해들을 재생산해 분열의 시대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더불어 살아야만 할 인간들이 서로 상대방 성은 가해자, 자신의 성은 피해자로 규정짓는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사회적 갈등을 해결되지 않을 분열의 늪으로 이끌고 있는 핵심 세력은 빗나간 정치인들과 얼치기 사회운동가들이다. 정치인들이여, 제발 겉으로든 속으로든 '우리 편 뭉쳐라'를 외치지 말라. 사회운동가들이여, '그들'은 타도해야 할 적이 아니라 손잡고 가야 할 이들임을 잊지 말라.

홍은희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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