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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 詩] 핥는다/장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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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두 마리가
서로 똥구멍을 핥는다
혀가 손바닥이라도 되는 양
맛있게 찰지게 핥는다
어김없다, 그 어떤 족보 있는 개일지라도
아무리 우아한 주인이 키우는 개일지라도
개는 개를 만나면
달려가 코부터 갖다 댄다
털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없이
덩치가 크거나 작거나 상관없이
똥구멍에 코를 들이박는다
구린내가 향기인 꽃,
서로의 꽃에 코를 박고 날름날름
말갛게 핥아 댄다
가던 발길 멈추고 바라보는
내 민망한 눈길에
뛰어드는 가벼운 웃음
그 순간, 난 느낀다 내 혀에
닿았던 달콤하고 향기로운 감촉
꽃의 항문에
코 박고 핥았던 먼 기억


■봄이면 무엇이든 쏟아져 나온다. 산수유, 매화부터 시작해 온갖 꽃들은 쨍쨍 얼어 있던 허공에다 제 맘껏 망울들을 터뜨리고, 냉이, 민들레, 그리고 이름이야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인 갖가지 들풀들도 곳곳에서 꼼지락거린다. 개구리들도 꽉꽉 울고 다람쥐들도 똘망똘망 뛰어다니고. 물론 사람들도 자꾸 다스워지는 햇살을 따라 괜히 바깥 걸음을 더한다. 그리고 그 앞엔 네오내오없이 강아지 한두 마리가 주인을 보채느라 부산하다. 아니 주인이야 뒤따라오건 말건 여기저기 킁킁거리다가 겨우내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보면 서로 부둥켜안고 냄새를 맡느라 아주 정신이 없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봄이면 동무들 손을 꼭 잡고 이 산 저 산 꽃냄새 맡으러 무르팍 까지는 줄도 모르고 쏘다니던 어릴 적 내가 꼭 그랬던 것처럼.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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