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것이다. 깨달음이란 그토록 별안간에 닥치는 일일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한번은 이토록 놀랍고도 결연한 깨달음을 체험하리라 믿는다. 하루키는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거의 울어버릴 것 같은 슬픔을 느꼈다"고 썼다. 때로 깨달음은 깊숙한 슬픔이기도 하니까. 그의 말을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하루키가 이 글을 쓸 때 자신의 기억을 되살렸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분명히 맥주와 피자를 앞에 놓고 산타페의 석양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모든 것이 붉게 물드는, 붉은빛이 시각(視覺)을 지배하는 그 시간에.
이때 찍은 사진은 '인생샷'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최고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황홀한 그 빛깔에 넋을 빼앗겨 노을이 어둠에 젖기 시작할 때에야 렌즈를 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글거리는 석양을 배경으로 우산을 펼친 듯한 모양으로 가지를 다듬은 소나무, 이제 막 전조등에 불을 밝힌 채 로마를 빠져나오는 장난감처럼 작은 피아트들이 번져 나가려는 나의 기억에 정착액(Fixative)을 뿌린 듯 선명한 이미지로 남았다. 그러나 사진은 내 기억만큼 강렬하지 않다. 나에게 렌즈를 다루는 기술이 더 있었다면!
내 사진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늦은 여름 로마에서 피우지로 가는 길가에서, 막 달아오르는 포도주의 취기를 느끼며 바라본 그 석양의 강렬한 충격과 충동을 결코 재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눈은 구조가 카메라와 흡사하다고 한다. 렌즈를 통과한 빛이 필름에 상을 맺듯 각막과 수정체를 통과한 빛이 망막에 도달해 형체와 색을 구분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아직은 카메라가 인간의 눈을 대신할 수 없다. 프로 사진가들도 석양을 찍으려면 여러 가지 이론에 경험을 보태야 좋은 사진을 얻는다. 그러나 인간은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거기다 심안(心眼)의 도움까지 받는다.
문화부 부국장 huh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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