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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수다] 아삭아삭한 맛의 숙주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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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선 변절의 아이콘, 밥상에선 화합의 아이콘


우리 집에서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늘 상에 오르던 삼색나물은 시금치, 고사리, 숙주나물이었다. 어릴 적에는 다른 나물 맛도 잘 몰랐지만, 숙주나물 맛은 더 몰랐다. 숨이 푹 죽어 흥건하게 빠진 국물에 잠겨있고 때로는 아삭함은 없고 질깃질깃한 느낌까지 드는 것이 어릴 적 기억의 숙주나물이었다. 그뿐 아니라 잘 쉬기도 하니 더운 날씨에는 나물이 되기 전에 이미 상해 있기도 해 다른 나물에 비해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다.

콩을 싹 틔워 키운 나물을 콩나물이라고 하고 녹두를 싹 틔워 키운 것을 녹두나물이라고 한다. 녹두나물? 난 먹어본 적이 없는데? 녹두나물이 바로 숙주나물, 숙주이다. 왜 녹두나물이라고 부르지 않고 숙주나물이 되었을까? 녹두나물이 숙주로 불리게 된 것은 조선시대의 집현전 학자 신숙주의 이름에서 붙여진 것으로 그의 행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신숙주는 조선 역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로 조선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세종의 총애를 넘치도록 받았다. 세종에 이어 문종 또한 그를 신뢰하였지만, 세종과 문종에 대한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어린 단종을 몰아내 수양대군을 보필하는 변절의 길을 걸은 대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녹두나물은 흔하게 먹는 일상적인 반찬이 아니라 어른들 생신상, 아이 돌잔치, 제사상에 오르는 특별한 나물이었고 다른 나물에 비해 쉽게 상하는 나물이었기에 여러 가지 나물 중 녹두나물이 변절의 아이콘이 되어 숙주나물이 되었을 듯하다.
같은 싹이지만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비교해 본다면 요리하지 않은 봉지 안에서도 콩나물보다 숙주나물이 쉽게 상하기도 하고 무쳐 두었을 때도 숙주나물이 쉽게 상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여름철에는 숙주를 판매하지 않는 마트들도 꽤 많다.

녹두는 몸속의 독을 없애 주는 해독작용이 강하니 녹두의 싹인 숙주도 우리 몸에는 이롭다. 우리 밥상에서 만나는 나물인 숙채뿐 아니라 일식이나 동남아식으로 즐기는 아삭아삭한 숙주나물 요리도 매력적이다. 콩나물처럼 익지 않으면 비린 맛이 나는 것도 아니니 숙주는 오래 익히지 않아야 아삭함이 살아있고, 맛이 튀지 않으니 어떤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 어릴 적 숙주나물의 기억은 잊고, 요즘 어느 요리에나 숙주를 한 움큼씩 넣어 끓이고 볶고 지지면서 숙주나물의 맛을 제대로 즐기고 있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http://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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