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4년, 카탈루냐의 가장 격렬했던 분리독립운동이었던 바르셀로나 공방전을 묘사한 그림.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원을 받고 프랑스-스페인 연합군과 싸우던 카탈루냐는 바르셀로나가 함락되면서 독립에 실패했다.(사진=위키피디아)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카탈루냐 자치정부 수뇌부가 벨기에로 도주하면서 카탈루냐의 5번째 독립 공화국 설립의 꿈은 또다시 무산됐다. 카탈루냐의 12월 조기 선거에서 분리파가 재집권에 실패할 경우, 벨기에로 도주한 자치정부 수뇌부는 공중분해되고 스페인 내부에 남은 독립운동 동력도 크게 약화될 전망이다. 이에따라 1641년, 첫 독립 시도 이후 400년 가까이 이어진 카탈루냐의 독립투쟁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완전히 끝날지 여부도 주목된다. 유럽 전체 분리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무력진압에 의해 자치정부 수뇌부가 벨기에로 도주해 공백이 생기면서 카탈루냐 정치권은 혼란에 빠진 상태다. 스페인에서는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던진 12월 조기 선거 카드가 카탈루냐 독립세력의 허를 찌른 것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벨기에로 간 자치정부 수반이 스페인의 조기선거를 받아들였지만, 카탈루냐 내부의 민족주의 정파들 사이에서는 균열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무책임한 행보에 푸지데몬 수반이 속한 카탈루냐유럽민주당(PDeCAT)은 카탈루냐 주민들에게 공분을 사고 있다. 대규모 시민 불복종을 공언해놓고 수뇌부는 도주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운 상황이 됐다. 카탈루냐 연립정부에 참여한 공화좌파당(ERC)은 푸지데몬과 달리 조기 선거 방침에 대해 스페인 중앙정부의 함정일 수 있다면서 참여 여부와 방식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이다. 또한 카탈루냐 의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민중연합후보당(CUP)은 한 발 더 나가 스페인이 제시한 조기 선거 자체가 정당성이 없다면서 참여하지 않고 장외투쟁으로 스페인에 저항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카탈루냐에서는 또다시 독립 좌절의 역사가 반복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카탈루냐에서 독립국가 설립을 목표로 한 대규모 독립운동은 앞서 4차례가 있었으며 1641년, 1714년, 1931년, 1934년 발생했다. 카탈루냐의 첫번째 독립운동은 유럽의 첫 대규모 국제전이었던 30년 전쟁의 막바지에 벌어진 프랑스-스페인 전쟁을 배경으로 벌어졌다. 당시 프랑스군을 끌어들인 카탈루냐 귀족들과 달리 대다수 카탈루냐 평민들은 전쟁을 거부했고, 귀족과 평민간 불화가 심해지면서 독립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현대에 와서는 1931년 4월, 스페인의 정치적 혼란을 틈타 카탈루냐 공화국이 성립됐지만 스페인 제2공화국 임시정부에 의해 철회됐고, 다시 1934년에 카탈루냐 공화국이 설립됐으나 스페인 정부군에 의해 진압됐다. 1936년에는 프랑코 독재정권이 집권하자 카탈루냐는 엄청나게 탄압을 받았으며 카탈루냐어 사용금지, 전통문화, 지명 등도 모두 탄압의 대상이 됐다. 1975년 프랑코 사망 이전까지 카탈루냐는 자치권을 박탈당한 상태였다. 이번 독립운동의 실패로 카탈루냐 독립운동의 동력은 상당부분 상실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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