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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6]프린스(P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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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스, 기꺼이 팝의 왕자님이라고 불러도 될, 위대한 아티스트가 죽은 해도 2016년이었다. 4월 21일, 마약성 진통제 펜타닐을 과다 복용하여, 어이없게, 세상을 떠난 프린스의 키는 무척 작았다. 조금이라도 크게 보이기 위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과격한 춤과 퍼포먼스를 무대에서 선보였기에, 그는 늘 허리 통증에 시달렸다. 신체의 핸디캡은 음악에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그는 몸의 통증 때문에, 결과적으로, 약을 끊을 수 없었고, 그 약 때문에, 찬란한 음악을 버려두고, 보랏빛 새가 되어, 푸드득, 저 세상으로 날아갔다.

[장석원의 시와 음악의 황홀 속으로 6]프린스(Pri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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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때로 울 수 없게 만든다? 정권이 미치지도 못하게 한다? 공포를 견디는 일? 관성적인 것? 우리가 우리를 믿을 수 없게 만든 적들의 책략? 우리에겐 자아비판의 축가? 세계의 재발견을 위해 우리는 난교 중?
한 번 더 신음하자. 애련도 좋다.

(……)

돌아보지 말고 울자. 낑낑거리며.
1984년 프린스는 혁명에 성공했던 것일까? 퍼플 레인에 젖어 퍼블릭 에너미가 되기 위해, 현실을 깨부수기 위해, 우리는 우리끼리 스와핑 중인 거야? 적 아니면 우리야? 관장하는 일? 고난의 길? 환원되지 않는 것?

울지 마 마이클. 조금 후에 우리, 후레자식이 되자.
―장석원, <위 다이 영(We Die Young)> 부분, <<역진화의 시작>> 중에서


내가 시를 쓸 때, 프린스는 분명 살아 있었는데, 지금 그는 떠나고 없다. 돌아올 수 없다. 프린스가 밴드 ‘혁명’을 이끌고 앨범 <<보랏빛 비(Purple Rain)>>로 전성기를 보내고 있을 때, 1984년의 대한민국은 군사독재와 민주주의 쟁취로 집약되는 암흑과 빛의 투쟁에 불붙어 있었다. 밴드 이름이 혁명이었다. 혁명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거릴 때였다. 그때 우리는 혁명하고 있었나? 지금 우리에게도 혁명은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어떤 혁명인가. 미국의 흑인 가수가 팝 음악의 혁명을 일으키고 있었을 때,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80년대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프린스의 음악을 숨어서 몰래 들었다. 미제 음악을 듣는다고 말하면 매국노 낙인이 찍힐 때였다. 죽은 그의 목소리가 내 귀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지금, 그의 노래 <디ㆍ엠ㆍ에스ㆍ알(D?M?S?R)>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흥겨워 하는 나…… 현재와 과거 사이의 간극에 빠져든다. 인용시에 언급된 마이클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이다. 마이클 잭슨도 프린스도 사라졌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생을 지나가고 있는가. 앨리스 인 체인즈(Alice In Chains)의 노래 제목처럼, 우리는 젊어서 죽는다(We die young). 아니, 지금 살아 있는 우리는, 젊은 날 죽었다(We died young).

천재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단어이지만, 아무나 천재이고 널린 것이 천재이지만, 프린스에게는 천재라는 말의 의미를 고스란히 부여해도 될 것이다. 그는 가수였고, 기타 연주자였고, 수많은 히트곡을 만든 작곡자였다. 1983년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당신이 내 사랑이었을 때(When You Were Mine)>, 1984년 샤카 칸(Chaka Khan)의 <난 널 느껴(I Feel For You)>, 1984년 쉴라 이(Sheila E)의 <화려한 인생(The Glamorous Life )>, 1985년 쉬나 이스턴(Sheena Easton)의 <슈가 월즈(Sugar Walls)>, 1986년 케니 로저스(Kenny Rogers)의 <당신은 내 사랑(You're My Love)>, 1986년 뱅글즈(The Bangles)의 <미칠 것 같은 월요일(Maniac Monday)>, 1989년 패티 라벨(Patti LaBelle)의 <요 미스터(Yo Mister)>, 1989년 마돈나(Madonna)의 <사랑 노래(Love Song)>, 1990년 시니어드 오코너(Sinead O'Connor)의 <너와 비교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Nothing Compares 2 U)>, 1990년 더 타임(The Time)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black version)>, 1991년 마티카(Martika)의 <사랑...당신이 할 일(Love...Thy Will Be Done)>, 1992년 셀린 디용(Celine Dion)의 <이 눈물과 함께(With This Tear)>, 1993년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의 <더 빅 펌프(The Big Pump)>, 2001년 노 다우트(No Doubt)의 <대기실(Waiting Room)>, 2002년 알리샤 키즈(Alicia Keys)의 <어떻게 당신이 더 이상 날 부르지 않는지(How Come You Don't Call Me Anymore)> 등등. 이 수많은 히트곡 목록은 작곡자 프린스를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유를 제시해주고도 남는다. 팝 음악의 역사에 프린스가 기록되어야 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프린스(본명이다)의 명곡 <보랏빛 비>를 듣는다. 세계 3대 기타리스트 같은 명칭을 부여하여 연주자의 순위를 매기고 논거도 없이 갑론을박했던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아 왔다. 순위표에 재즈나 블루스 기타리스트는 드물었다. 하드 락과 헤비 메탈 위주였다. 백인들이 가득했다. 일렉트릭 기타가 음악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예증한 사람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였다. 그는 흑인이었다. 프린스도 흑인이다. 과장된 표현을 즐기는 사람들의 말. 프린스가 지미 헨드릭스 이후 최고의 기타리스트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불행한 뮤지션이야, 프린스의 기타는 락과 리듬 앤 블루스와 팝 댄스와 펑크(funk)의 잡종이야. 나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팝 스타 프린스의 이미지는 그가 훌륭한 기타리스트라는 사실에 장막을 드리운다. 그의 기타는 바람이 휘젓는 빗줄기처럼 공간을 확장시킨다. 빗방울 사이로 퍼지는 보라 불빛. 아름다운 곡선으로 청자의 몸을 휘감는 보라색 비. 정점에서 낙하하기 전에 정지한 롤러코스터 같은 기타의 단속(斷續)이 마음을 달군다. 프린스의 음악은 육감적이다.

앨범 <<보랏빛 비>>의 5번 트랙 <달링 니키(Darling Nikki)>. 도색 잡지를 보며 혼자 즐기고 있다는 아슬아슬한 가사. 1986년 앨범 <<퍼레이드(Parade)>>에 실린 노래 <키스(Kiss)>. 나는 오로지 당신의 남는 시간과 키스만 원해, 나에게 모든 것을 맡겨요, 내 사랑은 당신의 음식이 될 건데…… 프린스의 성적인 가사를 두고 야하다, 도착적이다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대중문화에 프린스의 표현 수위를 넘어서는 것들은 많다. 프린스에게는 ‘19금 딱지’를 붙일 수 있지만, 그의 ‘음악-텍스트’의 결합체는 우리를 엑스터시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마음이 흥분한다. 여성이기도 하고 남성이기도 한 목소리, 한껏 달아오른 성대로 교성을 내뱉는 도발. 프린스는 인생의 아름다운 사건을 구성하는 성과 사랑의 관계 양상을 현란한 펑키 음악에 버무려 놓는다. 섹스로 치장하면 잘 팔리는 상품이 될 거야. 프린스는 이런 말을 거부한다. 그는 판매하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말초신경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과 뮤직 비디오가 음란하지 않은 이유. 사랑한다면, 몸의 아름다움과 돈이라는 조건은 불필요하다고, 당신만 있으면 된다고, 머뭇거리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냥 사랑하면 된다고, 프린스는 절박하게 때로 애절하게 노래한다. 쿵쾅거리는 비트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고 싶다. 탐 존스와 소음의 예술(Tom Jones and Art Of Noise)이 1989년에 다시 부른 <입맞춤(Kiss)>을 듣는다. 남성성도 여성성도 존재하지 않는, 사랑의 절정, 사랑하는 두 사람이 무성(無性)의 덩어리가 되는, 그 순간의 에로스를 표현한 프린스.

1989년 팀 버튼(Tim Burton)이 만든 영화 <<배트맨(Batman)>>의 사운드 트랙으로 실린 프린스의 싱글 <배트댄스(Batdance)>. 잭 니콜슨(Jack Nicholson)이 연기한 조커의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린다. 프린스의 주제곡은 악당 조커를 위한 노래였을지도 모른다. 공식 뮤직 비디오에서 프린스는 조커 분장을 하고 보라색 옷을 입은 조커 댄서들과 군무를 선보인다. 배트맨 옷을 걸친 다른 무희들과 조커의 광기를 춤으로 표현하고 있는 프린스. 블루지한 기타와 펑키 비트를 혼합한 이 음악은 프린스 내면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프린스는 규정할 수 없다. 프린스는 혼종이다. 프린스는 다중체이다. 프린스는 보라색에서 태어났다. ‘유일하다’는 단어가 프린스의 수식어로 마땅하다. 프린스는 이 세상에 한 명뿐이다.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프린스의 음악은 환희를 선사한다. 그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쉴라 이와 쉬나 이스턴과 함께 <유 갓 더 룩(U Got The Look)>을 부른다. 1989년이었다. 1980년대는 분명히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의 시대였다. 그의 명복을 빈다. 프린스가 보라색 비를 맞으며 저기에서 노래를 부른다.


당신을 슬프게 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절대로
당신에게 그 어떤 고통도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웃는 모습을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인데 단지
보랏빛 빗속에서 당신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보랏빛 비 보랏빛 비
보랏빛 비 보랏빛 비
보랏빛 비 보랏빛 비

그저 보랏빛 비에 흠뻑 젖은 당신이 보고 싶었을 뿐

(……)

그대여,
내가 여기에서 무슨 노래를 부르는 줄 안다면
어서 손을 들어 줘요

보랏빛 비 보랏빛 비
―프린스, <보랏빛 비(Purple Rain)> 부분

■장석원은… 2002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였다. 시집을 네 권(『아나키스트』, 『태양의 연대기』, 『역진화의 시작』, 『리듬』) 출간했지만, 음악 산문집 『우리 결코, 음악이 되자』(2010, 작가)를 시집만큼 아끼고 있다. 모든 종류의 음악을 사랑하는 황봉구 시인에게 지난 여름 킹 크림즌(King Crimson)의 1집 LP를 선물 받고는 작은 턴 테이블을 구입,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레코드를 다시 듣게 되었다. 벽장 속에 방치되어 있던 검은 비닐 재질 음악 저장 장치를 불빛 아래로 가져온 후, 음악의 나라에 다시 살기 시작했다. 현재, 광운대학교 국문과에서 학생들에게 시와 시론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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