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낡은 베옷처럼 지나간다, 2017년 7월 13일은 내 생애 한 번뿐이다
온종일 봉숭아 잎에 숨은 벌레 이름을 찾다가 나는 벌레 학생이 되었다
어디선가 남색 꽃이 찾아왔는데 그 또한 이름을 몰라 댕기꽃이라 부르며 눈 맞추었다
가끔은 부리가 이쁜 새가 찾아와 이름을 지어 달라 쫑긋거려 옷고름새라 부르며 함께 논다
풀뿌리가 압정이 되는 밤에는 별빛을 바늘귀에 꿰어 마음을 깁는다
내일이 오면 그 내일이 또 오늘이 되리라, 머문 자리가 다 꽃이 되진 않아도 지구가 더 늙기 전에 나는 오늘 족두리꽃 한 포기를 잊지 않고 심으리라 내일 다음 날의 명사를 오늘 꼭 발명하리라
■우리가 그저 들꽃이나 벌레, 새라고 부르는 것에게도 다 제각기 이름이 있기 마련이다. 다만 모를 뿐이다. 그런데 모르면 또 어떤가. 지금 내 머리 위에서 '호루룩쪽쪽' 우는 새의 이름은 어치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저 새 입장에서 말하자면 저를 두고 사람들이 어치라고 부르는 게 좀 어색하고 황당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다만 지금 내 곁에서 내가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울고 그 소리에 내 마음이 움직이고 그래서 차마 이름이라도 하나 내 입술로 지어 주고 싶은 간절함이 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머문 자리가 다 꽃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내 생애" 단 한 번뿐인 인연들을 향해 손길을 내밀 줄 안다면, 이미 모두 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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