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달 22일 "창작ㆍ출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상생할 수 있는 건강한 출판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100억원 규모의 출판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출판인들과의 출판산업 현장정책간담회에서다. 그러면서 도 장관은 "원소스 멀티유스로 활용할 킬러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도록 5년간 100억원(연간 20억원) 규모의 출판펀드를 조성하기 위한 협의를 관련 부처들과 하고 있다"고 했다.
출판펀드 추진 소식은 우선은 반갑다. 문체부 장관이 출판계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 직접 나선 것 자체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시인이어선지 출판의 중요성과 독서의 가치를 인정하는 도 장관의 인식도 출판계로선 경사라 할만 했다. '덕담'만 한 게 아니라 '건강한 출판 생태계'를 위한 펀드라는 선물보따리를 풀었으니 더욱 그랬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하면서 든 생각이 교각살우(矯角殺牛)와 격화소양(隔靴搔痒) 사이에서 균형이다. 교각살우란 제사에 쓰일 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 아예 소를 죽이고 말았다는 중국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지난 정권이 '블랙리스트' 등으로 문화계를 난장판으로 만들었으니 '적폐 청산'은 당연히 필요하다. 청산은 제도에 앞서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이 그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법정 임기가 보장된 이를 내치려면 이유가 있어야 한다. 명백하고 중대한 잘못이 있다면 법대로 처리해야 마땅하다. 전 정권 사람이라고, 뜻이 맞지 않는다고, '공신'을 위한 자리를 마련한다고 사표 종용이나 언론 플레이 등 편법을 동원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자기 사람 챙기기'가 되풀이 되면서 '건강한 문화계'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터이다. 이는 적폐를 없애려 서두르다 더 큰 것을 잃는, 바로 교각살우의 사례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한 새 정부의 문화정책에 대한 기대는 크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마는 멀리 보고, 정도(正道)를 걷기를 당부하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오늘의 진보는 내일의 보수"란 미국 문필가 앰브로즈 비어스의 풍자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 적폐를 없애려 서두르고, 무리를 하다가 뒷사람에게 자칫 적폐로 꼽힐 우려가 있으니 말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ㆍ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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