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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의 지리산별곡 ⑧]시골소년 같은 경호강, 그와 손 맞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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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성심원~수철리

[아시아경제]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⑧]시골소년 같은 경호강, 그와 손 맞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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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에 달맞이꽃이 수줍음을 타는 시간이다.

세상 그 어떤 광경보다
햇빛에 빛나는 이슬, 그 여명에 눈 부셔하는 새벽 꽃들,
이것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바람보다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자연과 함께 한다는 것은, 숲속을 거닌다는 것은
이처럼 아름다움을 탐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자연을 알아가는 것은 결국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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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사랑한다”
“알면 보듬게 된다”

세상의 일들은 모두 무관심과 무지에서 발생되는 것 아닐까?

작은 개미들의 움직임이나 벌들의 작은 날개 짓과 같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행동도
그 의미를 알게만 된다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작은 미물들도 작은 몸짓으로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 사랑을 받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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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사랑하고 네가 날 사랑하는 줄 나도 알고 너도 알지”

사실 어쩌면 사람들도 이것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고난의 세파도 함께 하는 것이다.
그것을 서로가 앎으로 힘을 얻는 것이다.

내가 지리산 산행에 나서는 것도
지리산을 알기 위함이요, 지리산을 앎으로 지리산을 사랑하게 되고
지리산 또한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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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석봉으로의 산행은 세상에 쉬운 것은 하나도 없다는 교훈을
다시 되새겨 주었다.
완만한 오르막길에서 느꼈던 봄의 왈츠와 같은 환희는
급경사로 인한 고통을 상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발을 한발 떼어 놓으면 금방 굴러 떨어져 경호강에 빠져버릴 듯하여
급경사 길을 거북이처럼 기어서 내려왔다.
산행은 올라가는 것 보다는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 수 있다는 말이
이곳에서 딱 들어맞았다.

절벽과 같은 급경사 길에서도
나무들은 능숙한 몸놀림으로, 오히려 더 절묘한 행동으로
그의 자리를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
아니 그 위험을 더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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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닿지 않는 바위틈에 피어난 진달래 한 송이,
천 길 낭떠러지에 학처럼 고고히 서 있는 소나무,
이들은 위험한 상황을 더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재주를 가졌다.

상수리나무, 자작나무, 산 목련, 가느다란 소나무 군락들...
이들은 마치 서커스단원 처럼 고공기예를 즐기고 있었다.
낭떠러지에서 오히려 몸을 숙여 균형을 맞추고
바람이 불 때는 그 바람 부는 방향으로 몸을 숙이는 지혜도 가졌다.

겨우 땅에 기생하고 있는 것과 같은 작은 돌들과 바위도 그렇다.
작은 호흡만으로도 굴러 떨어져 버릴 것 같은 위태한 곳에서도
체조요정처럼 단아한 자태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환경에서도 그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을
아름답게 바꾸어 놓을 줄 아는 자연의 이치에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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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를 내려와 뒤를 돌아보니 내 앞에 벽이 ‘턱’ 서 있는 듯하다.

그 수고에 보답이라도 하듯 완만하고 평탄한 길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여기에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경호강의 잔물결은
마치 물고기비늘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멀리서 보면 그의 일렁임이 마치 새가 날아가는 듯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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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정면으로 받는 육송의 몸뚱이는 붉게 물들었고
강변의 돌들은 경호강물 만큼이나 푸르고 정갈하다.
여기부터는 강물과의 동행이 시작된다.

강물은 나를 씻겨 주고 나의 손을 잡아주는 친구다.
지난 해 섬진강육백리 길을 걸을 때 그는 나의 손을 놓지 않았다.
마치 엄마 손잡고 나들이 가는 아이처럼....
꼭 맞잡은 우리들의 손은 1년 내내 놓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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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강은 투박한 머서마의 강이다.
섬진강처럼 곡선이 강조되지도 않는다.
섬진강은 어디를 가나 S라인이었다.
그러나 경호강은 뾰족한 지리산 계곡들 사이에서 시골촌놈의 투박한 모습이었다.
그 속에서 진정성이 묻어났다.

경호강은 건너편 고속도로에서 날아오는 소음도 잠재웠다.
강변길을 따라 걸으면서 강물의 흐름으로 생겨나는 물소리가 없었다면
차량들이 내는 온갖 굉음들을 모조리 내 두 귀에 꽂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나 같이 숲을 탐하는 자들을 위해 소음을 차단하는 청량제가 되어주었다.

강 길을 걷는 내내 내 두 눈은 길에 있지 않았다.
그 투박한 시골소년과 눈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와의 행복한 동행은 그리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잠시 만난 그와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⑧]시골소년 같은 경호강, 그와 손 맞잡다 원본보기 아이콘


경호강은 바람재를 너머 산청읍을 비켜지나 북으로 치닫고
나는 대장마을의 한 아주머니와 정담을 나눈 후
시냇물이 굽이쳐 품어 안은 평촌마을을 지나 그와의 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하루가 지나도 시골소년 같은 경호강은 눈에서 떠나지 않는다.

촌스런 너와 잡은 손, 너와의 눈 맞춤 경험을
이 세상 끝 날 까지 놓지 않으리!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⑧]시골소년 같은 경호강, 그와 손 맞잡다 원본보기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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