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김 위원장이 태도를 180도 전환했다. 스스로 '을(乙)'을 자처한 것이다. 14일 세종시 공정위에서 취임식을 가진 직후 기자실서 가진 간담회에서 그는 "후보자로 지명발표되고 난 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연락해 던진 첫마디가 '이제 갑을관계가 바뀌었다' 였다"며 "말하는 스타일이 단정적이고 확신에 넘쳤기 때문에 의원들에게 말할 때 학생들을 대하듯이 이야기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는데, 공정위원장이 그런 태도를 유지해서는 안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법률 제·개정과 관련해서도 "각 개정사안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어 있으므로 공정위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하되, 단일안보다는 복수의 안을 준비해 여·야 의원과 협의하겠다"며 "워낙 쟁점이 뜨거워서 쉽게 결론이 내려지지 않을 이슈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문가와 여·야 국회의원들이 참여하는 상임위 차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임명 과정의 잡음에 부담감을 느낀 탓이다. 야당의 반대로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됐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임명을 강행했다. 그는 "적합이든 부적합이든 보고서가 채택되는 모양새로 갔으면 절차의 부담이 덜어질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대통령이 강행 임명했다"며 "야당들이 협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다른 장관들도 고충을 겪는 상황이 된 것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다만 직원들의 입단속은 철저하게 할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궁금한 게 있으면 제게 직접 물으시고 직원들을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기자들에게 당부했다. 앞서 진행된 취임식에서 그는 공정위 임직원들에게 "OB(선배)나 로펌 변호사 등 이해관계자들과 사적으로 접촉을 자제하라"고 경고를 던졌다. 이해관계자 범위에 기자들도 포함되는 셈이다.
그가 경고를 날린 것은 임직원뿐만이 아니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수석들에게도 작심하고 '일침'을 날렸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재벌개혁은 검찰개혁처럼 할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며 "기업과 관련된 일은 워낙 이해관계자가 많고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을 몰아치듯이 개혁을 해 나갈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 국회가 개혁입법을 처리·통과시켜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갑을관계 문제는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재벌개혁은 의도적으로 크게 말하지 않았다"며 "재벌개혁, 경제적 집중 확대와 관련된 정책은 5조 이상 30개, 10조 이상 10개를 동일한 잣대로 접근하는 것이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집단국 신설 등 조직개편에 대해서도 "생각만큼 되지 않을 것"이라며 "국정기획자문위와 논의 중이고 행정자치부와도 열심히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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