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은 어떤 방식으로든 빚을 끼고 산다. 아파트를 사면 주택담보대출을, 전세자금이 부족하면 전세자금대출을, 모자란 대학 등록금은 학자금대출을,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엔 무이자할부를 쓴다.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을 통해 몇 백 만원 짜리 해외여행을 10개월 할부로 예약할 수 있다. 수천 만원이 넘는 고급 차를 할부는 물론 리스나 렌트로 탈 수 있다. 은행이나 매장에 찾아갈 필요도 없다. 휴대폰으로 몇 번 터치만 하면 된다.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을 사더라도 현금 대신 신용카드를 쓴다. 모두가 형태만 조금씩 다를 뿐 빚이다.
경제학원론에서는 화폐의 기원을 '물물교환을 대신할 수단'에서 찾는다. 하지만 일부 인류학자는 차용증서를 대신하기 위해 화폐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고대사회에서는 빚을 갚지 못하면 노예가 됐다. 악덕한 전주(錢主)들은 노예를 많이 두기 위해 의도적으로 빚을 지우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도 빚이 쌓이면 본인이나 자식을 몸종으로 보내는 일이 잦았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빚을 지우는 통로들을 끊임없이 진화시키고 있다. 빚은 자본주의에서 기회가 되지만, 모두가 기회를 잡을 순 없다. 생존게임에서 이겨야 한다. 낙오자는 빚더미를 짊어진다.
정부도 빚을 낸다.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40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 재무제표상 지난해 국가자산은 1962조원, 국가부채는 1433조원이었다. 순자산은 529조원으로 1년 사이 34조원이나 줄었다. 부채가 140조원이 늘어난 탓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반드시 갚아야 할 국가채무는 627조1000억원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38.3%로 선진국과 비교해 양호한 편이다.
조영주 경제부 차장 yjc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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