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영비법, 공정한 생태계의 초석이 될까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김동하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대표/작가

김동하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대표/작가

원본보기 아이콘
최근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놓고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핵심은 대기업이 배급업과 상영업을 겸업할 수 없도록 하고, 영화관이 특정 영화를 몰아서 상영하는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하는 것.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취지의 개정안을 동시 발의해 더욱 힘이 실렸다.

유력 대선주자로서 논란의 입법을 강행한 안 의원의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재벌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동물원 구조’를 깨자는 것인데, 삼성,LG,SK동물원을 CJ,롯데 동물원으로 넓힌 ‘영화판 공정성장론’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이너’한 중소 배급, 제작진영은 대기업 주도의 불리한 관행을 깰 수 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영화업계를 이끄는 ‘메이저’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안 의원 말대로 ‘빽이 실력을 이기는 불공정한 구조’를 깨는 건 좋지만 당장 ‘메이저’들이 투자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근거법은 ‘파라마운트법’으로 불리는 미국의 독과점규제법. 1948년 대법원은 상영관과 배급시장을 독과점한 8개 메이저 영화사의 수직계열화는 불법이라며 파라마운트 등 5개사에 대해 극장매각을 명령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논쟁은 첨예하다. 반대 측은 이 법안 후 미국영화의 위기가 왔고, 수직계열화는 부활했으며 대기업 투자위축과 중국기업 등으로의 국부유출을 부르는 반시장적 법안이라고 비난한다. 찬성 측에서는 이 법이 헐리우드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지금도 수직계열화는 극히 예외적인 수준이며 소비자들의 다양한 상영권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공청회, 토론회 등에서 논쟁이 맴돌기만 하는 데는 영화산업 평가기준의 문제도 엿보인다. 한해 극장 관객수가 2억명을 넘었다, 1000만 영화가 몇 편 나왔다는 식의 ‘숫자 보여주기’가 산업성장의 척도처럼 활용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영화산업에 참여해 경제적 후생이 어떻게 배분되고, 향후 어떻게 확대 재생산될 것인지에 대한 평가는 뒷전이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미 2015년 한국 사람의 연간 영화관람 횟수는 4.2회로 중국 0.9회 뿐 아니라 미국 3.8회보다도 높다. 넷플릭스, 유투브 레드, 아마존 등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플랫폼들이 급부상하는 미국에서도 ‘극장 관객 수’가 중요 척도일까.

생태계 차원의 진짜 문제는 한국의 창작진영 안에 내재돼 있다. 상영 투자 배급 제작의 수직계열화 속에서 창작진영의 스타들은 ‘회사’를 키우기 보다는 ‘개인’의 개런티나 인센티브에 관심이 쏠려 보인다. 미국처럼 제작사가 성장해 유통채널들을 인수하는 ‘역변(逆變)’은 언감생심이다.

문제는 수직계열화나 동물원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시장이 자유로운 경쟁을 조성하느냐에 있다.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하는 것이나 스크린 쿼터를 도입하는 것이나 정신은 마찬가지, 다양한 상영권을 보장하고, 건전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있다.

물론 온 국민이 멀티플렉스를 즐기는 마당에 프랑스처럼 ‘1관1영화’수준으로 돌아가거나 한 영화 최대 상영회수를 30%로 제한하는 일은 과격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산업의 메카 미국에서도 ‘메이저 상영관=메이저 배급사’의 등식은 깨진 지 오래다. 자본주의의 핵심가치는 ‘자유로운 경쟁’에 있고, 정부의 역할은 ‘공정한 시장조성’에 있다. 미국은 70년전 8개 메이저 영화사 중 5개사의 수직계열화를 끊었지만, 우리는 2개 메이저 상영관의 수직계열화가 유지돼야한다고 하기엔, ‘콘텐츠 강국’ 한국 영화산업의 경쟁구도가 너무 초라해 보이지 않은가.

김동하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대표/작가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포토] 오동운 후보 인사청문회... 수사·증여 논란 등 쟁점 오늘 오동운 공수처장 후보 인사청문회…'아빠·남편 찬스' '변호전력' 공격받을 듯 우원식,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당선…추미애 탈락 이변

    #국내이슈

  • 골반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이…"3년 만에 앉고 조금씩 설 수도" "학대와 성희롱 있었다"…왕관반납 미인대회 우승자 어머니 폭로 "1000엔 짜리 라멘 누가 먹겠냐"…'사중고' 버티는 일본 라멘집

    #해외이슈

  • '시스루 옷 입고 공식석상' 김주애 패션…"北여성들 충격받을 것" 이창수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김 여사 수사 "법과 원칙 따라 제대로 진행" 햄버거에 비닐장갑…프랜차이즈 업체, 증거 회수한 뒤 ‘모르쇠’

    #포토PICK

  • 車수출, 절반이 미국행인데…韓 적자탈출 타깃될까 [르포]AWS 손잡은 현대차, 자율주행 시뮬레이션도 클라우드로 "역대 가장 강한 S클래스"…AMG S63E 퍼포먼스 국내 출시

    #CAR라이프

  • [뉴스속 용어]한-캄보디아 정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 세계랭킹 2위 매킬로이 "결혼 생활 파탄이 났다" [뉴스속 용어]머스크, 엑스 검열에 대해 '체리 피킹'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