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원지검 첨단범죄….” 불과 2초 남짓이었을까.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기다렸던 바로 그것이구나. ‘침착하자. 침착하자….’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요동치는 심장의 울림을 억누를 수 없었다. 100m 달리기를 앞두고 출발 총성을 기다리는 심정, 대학 입시 합격자 발표를 앞둔 기분과 유사했다.
상대의 목소리는 예상과 달랐다. 어눌한 말투의 중국 동포 억양을 예상했지만,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 목소리였다. 상대의 전화 음성 뒤로는 “저는 수원지검 첨단범죄….”를 언급하는 제2, 제3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어떤 사무실에서(방음처리도 안 된 상태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고 있는 모양이다. 상대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만 알고 있을 뿐 내가 누구인지 그 정체는 알지 못했다. 상대는 나를 낚으려 했겠지만, 나 역시 상대를 향해 그물을 던졌다.
우선 탐색전이 필요했다. “수원지검 어디라고 했죠?” 상대에게 되물었다. 상대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수원지검 첨단범죄….”라는 답변을 되풀이했다. 반격의 타이밍을 잡다가 기습 질문을 던졌다. “첨수부?” 상대는 당황하는 눈치였다.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상대는 반말을 시작했다. “너 누구야?” 검찰 직원이라면 반말을 꺼낼 리 없는데 상대 역시 자신의 신분을 너무 빨리 노출했다. 보통 이런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원은 욕설을 하며 전화를 끊는다고 한다. 은근히 긴장했지만, 상대의 대응은 달랐다.
상대는 “네가, 누군데?”라고 다시 반말을 전한 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욕설을 듣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낯선 사람의 전화, 잠깐의 떨림과 흥분을 경험했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생생한 기사로 보이스피싱 근절에 힘을 보태고 싶었는데…. 다시 기회는 찾아올까. 그 기회가 찾아오면 월척을 낚을 수 있을까. 기약 없는 그 날을 기다리며 다시 드넓은 바다에 그물을 던져본다.
류정민 산업부 차장 jmryu@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