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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 "육혈포에 건 손가락을 펴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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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올해의 영화로는 '밀정'을 꼽고 싶다. 지금은 광복 후 70여년이 지났고 대한민국을 당연시 여기지만 일제시대 사람들의 머리 속은 어땠을까. 일본은 갈수록 위세를 더해가고 조선의 힘은 미약하게만 보였을 것이다.

 영화 속 이정출(송강호)이 한 때 동지였던 김장옥(박희순)에게 내뱉은 말 "너는 조선이 독립할 것 같냐". 이겨서 목표를 달성할 가망이 없어보이는데도 목숨을 걸어야 하느냐. 김장옥은 자결로 답한다.
 영화는 교과서적이고 박제처럼 느껴질 수 있는 독립운동에 대해서 다시금 곱씹어보게 했다. 과연 우리는 단지 '해야 할 일'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행동할 수 있을까.

 같은 시대를 살고 있어 행운이라고 느낄 정도인 배우 송강호의 내밀한 연기도 영화에 더욱 빠져들게 했음은 물론이다. 그에 앞서 실제 있었던 사실을 최대한 구현했다는 점이 울림의 진폭을 키웠다.

 영화 속 김장옥의 실제 모델은 독립운동가 김상옥이다. 3ㆍ1운동 이후 암살단을 조직해 수차례 일본 고관과 민족반역자 응징에 나섰다. 의열단에 들어간 이후에는 영화에서처럼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 임시정부가 있던 중국 상하이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 총독 암살을 위해 서울로 들어왔으나 일제의 경계 강화로 여의치 않자 1923년 1월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일본 경찰은 닷새가 지나서야 투탄의 주인공을 알아채고 김상옥의 은신처를 20여명의 무장경찰로 에워쌌다. 마치 홍콩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던 총격전 장면은 과장이 아니었다. 명사수였던 김상옥은 두 손에 권총을 들고 총격전을 벌였다. 종로경찰서 유도사범이자 형사부장이었던 다무라를 사살했고, 여러 명에게 중상을 입힌 후에 추격하는 일본 경찰에게 총을 쏘아대며 눈 덮인 남산을 넘어 한 사찰로 들어갔다.

 승복과 짚신을 빌려 변장하고 산을 내려와 또 다른 은신처에 숨었다. 발에 걸린 동상을 치료하면서 다시 거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은신처도 일본 경찰들에게 발각됐다. 이번에는 경기도경찰부장이 총지휘관이 돼 김상옥을 잡기 위해 기마대와 무장경관 수백명이 동원됐다.

 김상옥은 다시 한 번 단신으로 3시간반에 이르는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동상에 걸린 발가락이 떨어져나가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총에 맞아 스스로 떼내는 것으로 표현됐다) 결국 탄환이 다 떨어지자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마지막 남은 한 발을 자신의 가슴에 쏘았다.

 당시 동아일보는 호외를 통해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전했다. "숨이 진 후에도 육혈포에 건 손가락을 쥐고 펴지 아니하고 숨이 넘어가면서도 손가락으로 쏘는 시늉을 했다."

 중학생으로 등굣길에 총격전 상황을 직접 목도했던 화가 구본웅은 나중에 그의 시화첩에 추모시를 남기기도 했다. "…양 손에 육혈포를 꽉 잡은 채, 그만-/아침 7시, 제비 길을 떠났더이다/새봄 되오니 제비시여 넋이라도 오소"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 못지 않은 비극 속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을 것이다. 이 나라는 그런 피 위에 서 있다. "이게 나라냐"는 한탄 속에 휩싸인 이 나라는 그런 나라다. 대통령은 속히 내려와야 한다.

박철응 금융부 차장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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