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고용노동부가 올 4월에 발표한 기간제·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법을 넘어선 새로운 규제로 가득하다. 대표적인 것이 2년이 안 된 기간제 근로자라도 '상시·지속업무'라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토록 하는 내용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기간제 근로자라도 계속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자고 한 정부다. 수개월 만에 전혀 상반되는 취지의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사내하도급 활용이 활발해지면서 원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 격차에 대한 논란도 불거져 나오고 있다. 가이드라인에서 사내협력업체 근로자가 차별 없는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원청이 노력하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기업들이 원가 절감을 위해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임금을 낮게 지급하고 있다는 뉘앙스마저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정규직이라고 주장하는 대기업 사내협력업체 근로자의 임금수준은 중소기업 정규직 근로자보다 훨씬 높은 경우가 대다수다. 현장에서는 구직자들이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사내협력업체를 선호하는 것 또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그간 동반성장 분위기 속에서 원청 대기업이 상생협력차원에서 자발적으로 꾸준히 노력한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노동 분야의 많은 소송들은 정부 지침에 따른 오랜 관행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는 데서 시작됐다. 이러한 경험을 돌이켜보면 가이드라인에 대한 기업들의 걱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은 자발적인 준수를 유도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사 모두에게 효과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고 현장에 안착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이 비현실적인 내용이나 일반적인 보호를 강제하는 것이라면 현장이 느끼는 강도는 법률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한 때 노사정이 함께 추진했던 노동개혁은 노동조합에 대한 보호가 한쪽으로만 쏠려 근로자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진지한 성찰과 통렬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됐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부가 정규직 과보호 문제를 방치한 채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정책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라는 본연의 목적 달성도 어렵게 할뿐이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임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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