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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한詩] 밤 기차/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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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에 무언가 두고 내렸다 잠깐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옆 좌석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깨 보니 다른 누군가 타고 있었다 다시 잠들었다 깼을 때 또 다른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기차는 멈춰 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과 우산을 챙겼다 기차에서 내리자 겨울밤의 냉기가 밀려왔다 사람들을 뒤따라 계단을 오르고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처음 보는 역이었다 처음 보는 지명이었다 모두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쌓인 눈 위로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차에 무언가 두고 내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 뒤돌아보니 기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누군가 날 깨워 주길 바랐다

 
[오후 한詩] 밤 기차/강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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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게 있다. 기차에 무얼 두고 내린 듯한데 두고 내린 게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느낌적 느낌. 상실감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말 가지고 있었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고전적 상실감)이고, 다른 하나는 단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었던 것을 마치 잃어버린 듯 느낄 때의 상실감(낭만적 상실감)이다. 앞의 상실감은 소유 대상에 대한 상실감이다. 그래서 그것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면 그만이다. 이에 비해 낭만적 상실감은 애초부터 그 대상이 없기 때문에 영원히 회복될 수 없는 상실감이다. 그런데 낭만적 상실감은 그렇기에 힘이 세다. 그리고 그렇기에 잃어버렸다고 착각하는 그 대상은 생을 걸고서라도 되찾고 싶을 만큼 소중한 그 무엇이 된다. 예컨대 '우리 젊은 기쁜 날' 그 어느 한때의 순결하고 오롯했던 마음, 그런 것 말이다. 냉정하게 따져 보면 백 퍼센트 그런 적은 없었지만, 그러나 그러함에도 가져 보았음 직한 그 무엇, 잃어버려서는 절대 안 되었던 그것, 그런 게 있다. 그것이 당신 생의 윤리이고, 그만큼 당신은 아름답다.

채상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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