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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석의 몸으로 쓰는 이야기] 프로메테우스의 옆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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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옆구리에서 피가 철철 흐른다. 독수리가 부리로 쪼아대서 그렇다. 이 녀석은 대머리다. 죽은 짐승의 가죽을 찢고 대가리를 집어넣어 이리저리 후벼대며 내장부터 파먹는다. 그러기 좋으라고 대머리로 만들었다. 이놈도 신이 창조했다면 말이다. 프랑스 화가 귀브타브 모로가 그린 '프로메테우스'다.
 독수리는 사슬에 묶인 사나이의 간을 파먹는다. 사나이는 신의 저주를 받은 자다. 그를 결박한 사슬도 신이 만들었다.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 제우스가 발주했을 것이다. 신이 만든 사슬을 누가 끊으랴. 간은 재생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면 뭐하나. 독수리가 와서 또 파먹고 가는데. 고통은 무한 반복된다. 동영상을 반복해 돌려보듯, 레코드판 위에서 바늘이 튀듯 같은 장면이 영원할 것처럼 계속된다.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벌은 가혹하다.

 사나이의 이름은 프로메테우스. '앞을 내다보는 자'란 뜻이다. 그리스신화의 신족(神族), 티탄의 후예. 아버지는 이아페토스, 어머니는 클리메네다. 인간을 지극히 사랑한다. 그럴 수밖에. 동생 에피메테우스(뒤를 돌아보는 자)와 함께 인간을 만들었다. 프로메테우스는 흙을 취하여 인간을 빚되 형상은 신을 베꼈다. 그 모습은 고귀하고 우아하다. 허리를 곧추세워 한낮의 태양과 밤하늘의 뭇별을 바라본다. 즉 꿈을 꾸는 존재다! 아테나가 숨을 불어 넣어 생명을 주었으니 인간의 숨결은 신의 호흡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불을 훔쳐다 인간에게 준다. 그러나 그 죄로 코카서스의 바위에 묶이지는 않았다. 프로메테우스는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었으니 곧 예언자다. 그는 제우스도 모르는 비밀 하나를 알았다. 제우스는 제 아들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쫓겨날 운명이었다. 제우스도 그 사실을 알았다. 그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물었다. 그 아들을 낳을 여인이 누구냐고. 어미를 없애 아들이 태어날 싹을 지우려는 심산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렇게 고집스런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 대해서만큼은 무한사랑을 보인다.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화가 오토 그라이너는 1909년에 진흙으로 인간을 만든 뒤 생명을 불어넣어줄 여신을 기다리는 프로메테우스를 그렸다. '예술의 사회경제사'를 쓴 이미혜는 "거인 같은 프로메테우스와 그를 닮았지만 인형처럼 무력하고 왜소한 인간이 대조적"이라고 썼다. 모로가 그린 프로메테우스는 철석같은 의지와 저항정신을 간직했다. 이름에 걸맞게 저 먼 곳 어딘가를 바라본다. 나는 그 강렬한 눈매에서 베네치아에 가서 본 모자이크 한 점을 떠올린다. 산마르코 성당을 장식한 12세기의 예수가 악마의 유혹을 받는다. "돌을 빵으로 만들고 악마를 경배하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유혹은 현대에 이르러 지극한 공포와 다름없게 되었다. 악마는 이미 무수한 영혼을 헐값에 사들였다. 권력, 부, 헛된 믿음. 엉터리 정치가, 자본가, 성직자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도 누군가에게 옆구리를 내주어야 할 운명이었다. 물과 피를 쏟아 정화해야 할 죄악이 세상에 충만했다. 프로메테우스여, 그대는 내다보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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