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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거문고와 나무꾼

최종수정 2016.01.20 10:58 기사입력 2016.01.20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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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금융부 차장

박철응 금융부 차장

아직은 만취에 이르기 전, 사물의 경계선이 부드러워질 즈음에 선배가 느닷없이 '백아절현'(伯牙絶絃)을 내뱉었다. 꼬인 목소리로 "옛날에 백아라는, 거문고를 기가 차게 켜는 싸나이가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이 사람이 거문고를…" 선배는 스스로 각색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백아는 중국 춘추시대의 음악가였다. 진나라에서 벼슬을 하던 중 초나라에 갔을 때 일이다. 백아가 탄 배는 강가에 닻을 내렸고 마침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 울적한 마음이 들어 거문고를 꺼내 연주하고 있으려니 허름한 복장의 나무꾼이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종자기라는 이름의 나무꾼은 백아의 음악을 너무도 잘 이해했다.

백아가 아무 말 없이 산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좋도다. 산이 높고도 험함이여! 태산과 같도다"고 했으며, 강물을 떠올리며 연주하면 "넓고 넓음이여! 도도한 양자강과 황하와 같구나"라고 받았다. 두 사람이 신분을 떠나 절친한 친구가 됐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겠다.

한 번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들어간 동굴에서 백아가 비 내리는 곡조의 '임우지곡'(霖雨之曲)과 산이 무너지는 곡조의 '붕산지곡'(崩山之曲)을 연주했다. 이 때도 종자기는 곡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다.

초나라에서의 일을 마치고 진나라로 돌아가게 된 백아는 종자기와의 후일을 기약했지만 막상 종자기를 다시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백아는 가슴을 치며 종자기의 무덤 앞에서 마지막으로 한 곡을 연주한 뒤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리고 다시는 거문고를 잡지 않았다. 자신의 음악을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친구가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연주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으리라.
술자리에서 선배가 이 고사성어를 꺼내 든 것은 우선 멋있게 보이려 함이 컸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고자 했던 얘기는 "야, 니 주위에 누가 종자기인지 잘 보란 말이다. 잘 봐서 그냥 스쳐 지나보내면 안 된다니까"였다.

종자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를 어느 정도라도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나이가 쌓여갈수록 삶은 더 건조해지고 마음을 나누기보다는 맹탕 같은 얘기만 나누는 일이 많아지는 듯하다. 마음을 보일 일이 없으니 알아줄 이도 없어짐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다.

그런데 거꾸로 백아는 나무꾼으로서 종자기의 삶과 생각들을 얼마나 이해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받으려면 먼저 베풀어야 한다고, 주위의 거문고 타는 소리나 나무 찍는 소리를 유심히 들어봐야겠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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