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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똥개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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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늦은 저녁을 혼자 먹는 게 안쓰러웠는지 마눌님이 슬그머니 다가와 밥상 귀퉁이에 앉는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은 동네 소식을 주섬주섬 꺼내놓는다. 옆집 아저씨는 주말이면 부인에게 하루 세끼를 공양한다며 1절, 옆옆집 아저씨는 주말마다 멋진 이벤트로 가족을 감동시킨다며 2절. '미친놈들' 물론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 몸으로 말하자면, 얼마 전 마눌님의 생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대역죄인이 아니던가. 그러니 입 닥치고 마눌님 말씀을 경청할 수밖에. 다행히 그 말씀 가운데 새겨들을 대목도 있더라.

얼마 전 옆옆옆 집에서 강아지 한마리를 입양했다. 소란스럽고 경망스러운 녀석이었다. 그 집 남자는 '족보도 없는 똥개'라고 매일 구박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은 남자의 구두를 물어뜯고 똥오줌을 지리는 방식으로 앙갚음했다. 일격을 당한 남자는 연신 게거품을 물어야 했다.
어느 날이었다. 문득 남자는 녀석이 안쓰러웠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겨우 강아지가 아니던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혼을 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던가. 그날부터 이름을 '해피'로 바꿔 불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녀석이 똥오줌을 가리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구두도 물어뜯지 않고 가끔은 남자 옆구리에 발라당 누워 아양을 떠는 것이다. 이름 하나 바꿨을 뿐인데 족보도 없는 똥개가 기적을 행한 것이다.

켄 블랜차드 박사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도망가는 죄수를 잡는 스포트라이트처럼, 잘못한 것에 집중해 강조하면 할수록 더욱 잘못할 가능성이 커지고 부정적인 힘만 키운다." 긍정의 말이 주는 긍정의 효과, 부정의 말이 주는 부정의 효과는 명백한 진리다. 저 똥개의 변화가 암시하듯, 칭찬은 미물도 영물로 둔갑시킨다.

미국의 물류서비스 회사 PIE는 배송기사들의 부주의로 매년 25만 달러의 손해가 발생하자 '배송기사'라는 호칭을 '물품분류 전문가'로 바꿔버렸다. 그러자 직원들의 눈빛이 달라졌고, 한달 뒤에는 배송오류가 10분의 1로 줄었다. 말과 언어가 가진 힘에 대해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명언을 남겼다. "죽은 이를 무덤에서 불러낼 수도, 산 자를 땅에 묻을 수도 있다. 소인을 거인으로 만들 수도, 거인을 망가뜨려 없애 버릴 수도 있다."
현인들의 가르침을 받들어 고백건대, 내 비록 그녀의 생일을 까먹었지만 그 때문에 '마눌님, 마눌님' 하면서 비굴하게 구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면서 마눌님이 점점 무서워 극존칭을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길래, 호칭이 기적을 낳는다길래 생활속에서 이를 실천할 뿐이다. 사나이답게 칭찬으로써 가정의 행복을 구원하려는 것이다. 진짜, 정말이다.





이정일 산업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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