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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최택 6단

최종수정 2020.02.12 11:41 기사입력 2016.01.12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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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민 사회부 차장

류정민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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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웃고만 있어도 아름다운 사람.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최택(박보검) 6단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훤칠한 키에 꽃미남 외모까지, 최택은 요즘 여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는 쌍문동 봉황당 골목의 '천재 바둑 기사'로 통한다. 최택이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배역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주인공은 바로 이창호 9단이다. 평소 말수가 적은 모습, 대국 때마다 정장을 차려입는 스타일, 부친이 금은방을 하는 것까지 최택 6단과 이창호 9단은 닮은꼴이다.
최택의 인기 덕분에 이창호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나고 있다. 이창호는 1975년 7월 전주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에게 바둑을 처음 배웠다고 한다. 그때가 만 7세 6개월이다. '응팔'의 시대적 배경인 1988년은 이창호에게도 의미 있는 해다. 그해 75승 10패(승률 88.2%)를 거두면서 국내 프로바둑 연간 최고승률을 기록했다. 이때부터 '바둑 일인자=이창호'라는 등식은 한동안 이어졌다. 돌부처(石佛)로 불리는 이창호는 탁월한 끝내기 솜씨 때문에 '신산(神算)'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창호는 무수히 많은 국내 대회와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가장 극적인 승부는 2005년 2월 제6회 농심신라면배 국제단체전이다. 당시 대회는 국가별로 5명씩 출전해 돌아가며 대국하는 방식인데 한국은 이창호 홀로 남았다. 중국은 3명, 일본은 2명의 기사가 남아 있었다. 당시 이창호는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국내 대국에서는 승보다 패가 많은 평범한(?) 기사였다. 비관론이 번져갔지만, 이창호는 기적을 현실로 만들었다. 중국과 일본 기사 5명을 차례로 한 명씩 꺾고 한국에 우승을 안겼다.

한국 바둑 역사에 각인될 성과를 남긴 인물은 조훈현, 조치훈, 이세돌 등 여러 명이 있다. 그중에서도 이창호를 최고로 꼽는 것은 단지 화려한 성적 때문만은 아니다.
전성기 이창호 바둑은 물 흐르듯이 부드러웠다. 과도한 이익을 탐하고자 무리를 하는 법이 없다. 거대한 성을 조금씩 쌓아 올리듯 묵묵히 한 수, 한 수 놓을 뿐이다. 묵직한 그의 '돌'은 탄탄한 방벽(防壁)이 됐고, 좀처럼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창호도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이창호 바둑'에 대한 국내외 바둑 기사의 존경심은 변함이 없다. '이창호 바둑'은 그 자체로 역사였다. 항상 상대를 존중하는 대국 자세도 귀감이 됐다. 한국의 이창호를 넘어 세계의 이창호가 된 까닭이다.


류정민 사회부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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