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의 미디어 좌충우돌
여하튼 그런 내가, 어느날 이 땅의 여당이 당의 강령에 있던 '보수'를 지우면서 자기 변색을 시도하는 모양새를 보면서, 대단히 놀랐다. 아무리 봉투정당 차떼기당 그네타는 향단이가 되어 질식 직전에 있다 해도, 자기 호적을 파가면서까지 자기부정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저걸 유연하다고 봐야 할까, 다급하다고 봐야 할까. 다급하니 뭐든지 내다 파는 꼴이라고 봐야 할까. 혀를 찬다.
보수(保守)는 굳이 어원을 캐물어 꼬장꼬장해질 것도 없다. 뭔가를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이 말 속에 그대로 들어있다. 뭘 보호하고 지키는 것인지가 중요하겠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보호하고 지킬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바로 그 점이다. 보호하고 지키는 것은, 이미 존재하거나 형성되어있는 무엇이라야 한다. 아직 생겨나지도 않은 것을 지킬 순 없지 않은가. 여기에 신념이 개입한다. 지금 현재까지 되어있는 것이, 지킬 만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전통이라고도 말할 수 있고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 혹은 성취라고도 말할 수 있고 축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지금 이 땅의 문화와 삶과 체제와 성취를 이루고 있는 갖가지 내용물 중에 지킬 것이 많은가, 아니면 버릴 것이 많은가. 그것을 따져 지킬 것이 그래도 더 많으며, 그것을 지키는 것이 더 유익하고 미래지향적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보수의 신념이다.이에 맞서는 혁신은, 지킬 것보다 바뀌야할 것이 더 많으며 바꾸는 것이 더 미래를 위해 나은 선택이라고 보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보수하면서 미래를 만들겠다는 신념은, 세상의 문제들을 한꺼번에 모두 바꿔버리겠다는 조급증에서 해방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보수의 미덕은 여유와 냉정이다. 과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고쳐쓰겠다는 태도이다. 답답해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신중함과 느림 속에도 정답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기술 혁신으로 세상이 전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이 지녀야할 원칙들과 품격들, 그리고 사회적인 기초약속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자칫 제 호적을 파버린 보수가, 제대로 감도 잡지 못한 새로운 것들과 깨춤을 추느라, 그나마 보수해왔던 진정한 것들마저 내동댕이치는 게 사실 더 큰 문제다. 그건 보수가 뭔지도 모르는 정말 꼴통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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