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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우리가 챙기지 못한 선진 시민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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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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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1. 집 뒤에 산이 있다. 아름드리나무가 빼곡하다. 깊은 계곡이 산을 가로지른다. 산은 그리 높지 않다. 길도 잘 닦여 있다. 그런데도 등산객이 많지 않다. 여느 산처럼 뒷사람에 치이지 않는다. 발걸음은 가볍다. 아주 천천히 산에 오른다. 발걸음은 더디지만, 무거운 마음은 진한 흙냄새가 달랜다. 쌓였던 시름은 숲 사이 드리워진 햇살이 녹인다. 옷을 적신 땀은 시원한 바람이 날린다.

그러나 이 행복함은 곧 깨진다. 여기저기서 가요가 끊임없이 흐른다. 댄스에서 트로트까지 곡도 다양하다. 산 중턱 쉼터엔 아예 술과 음식이 점령한다. 걸음을 재촉한다. 힘들지만 그저 노랫가락에서 벗어나고 싶다. 얼마 못 가 난 내 귀를 의심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 보살, 할렐루야. 하얀 자외선 차단제로 얼굴을 숨긴 강시도 나타난다. '아! 산도 쉴 곳이 못 되는구나!'
# 장면2. 아들의 유치원 운동회 날이다. 운동회는 토요일 1시부터다. 다들 자리를 편다. 바리바리 싸 온 도시락을 꺼낸다. 1시부터라 아무 생각 없이 온 날 책망한다. 운동회 내내 부모들은 운동장에서 뛰고 구른다. 아빠 노릇이 쉽지 않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이 가득하다. 무엇과 바꿀까 싶다.

마지막 놀이를 시작한다. 부모들이 일렬로 마주 보고 선다. 폭이 1m 남짓한 천을 팽팽히 마주 잡는다. 아이들이 그 위를 기어간다. 누군가 손을 놓거나 힘을 빼면 아이가 위험하다. 내 아기가 지나간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더 들어간다. 그러나 갑자기 반대편이 축 늘어진다. 마주 선 엄마 한 명이 갑자기 대열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자기 아이를 찍고 있다. '아뿔싸! 나도 찍고 싶어!'

# 장면3. 늘 역이나 공항 화장실은 붐빈다. 우리는 익숙하게 소변을 보는 사람 뒤에 선다. 뒤에서 앞사람의 뒤태를 감시한다. 빨리 끝나길 재촉한다. 그래도 소변은 좀 낫다. 대변을 보는 칸은 그야말로 '낙장불입'이다. 칸칸이 사람이 문 앞을 지켜 선다. 아무리 먼저 왔어도 소용없다. 앞사람이 나오길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정말! 화장실조차 공평하지 못하구나!'
# 장면4. 비가 흩뿌리는 토요일 오후 4시. 유명한 칼국수 집을 찾았다. 주차장은 널찍하다. 주차 안내 요원 4명은 커다란 우산을 쓰고, 빨간 경광등으로 주차를 지시한다. 차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식당까지 걸음을 재촉한다. 나는 아기를 안고 뛴다. 주차 요원의 우산 서비스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식당 안은 시끌벅적하다. 주문은 아예 없다. 그냥 사람 수대로 칼국수가 나온다. 우리는 그저 말이 없다. 허겁지겁 칼국수를 입에 밀어 넣는다. 칼국수 값은 비싸고, 양은 적다. 공깃밥을 시킨다. 주문 받고 밥을 짓나 보다. 칼국수가 다 비워 질 때쯤 공깃밥은 던져진다. 주말 저녁 외식은 20분을 넘기지 못한다. 계산대엔 뜻밖에 두 명이 서 있다. 사장인 듯하다. 일손이 부족한 식당 안과 대조적이다. 카드를 받아 들고 익숙하게 결제를 돕는다. 그러면서 쉼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다. 손님과 얼굴도 마주칠 틈이 없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난 그냥 영혼 없는 말을 내뱉는다. '고맙습니다.' 비는 더욱 거세진다. 난 내 차까지 더욱 빨리 뛴다. '도대체! 뭐가 고마운지!'

한국 사회는 과도기다. 경제가 고성장에서 저성장으로, 인구의 중심은 청년에서 노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속도도 빠르다. 과거 민주와 반민주는 투쟁이었다. 지금 보수와 진보는 갈등이다. 하나를 위한 투쟁에서 서로가 갈라선 갈등으로 변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정신과 의식이 혼란스럽다. 이전엔 큰 문제가 아니었다. 먹고 살기 위해 앞만 보고 내달렸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정신과 의식은 소득 수준을 좇지 못한다.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

선진 사회에 맞는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그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치, 사회, 종교 모두 우리의 정신과 의식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고민하고 제시해야 한다.

산은 우리 모두의 공간이다. 자기의 아이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길게 늘어선 한 줄이 공중화장실에서 더 합리적이다. 나는 맛있는 칼국수를 먹은 고마운 손님이다.

오동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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