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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의 즐거움]'이름'으로 펼친 노자 빅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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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없음(無名)을 태동기(天地之始)라 하고, 이름이 있음(有名)을 문명기(萬物之母)라 한다."

나는 천지지시와 만물지모를 조금 과격하게 해석했다. 천지의 시작과 만물의 어머니라는 말의 차이가 뭔지 헷갈리기 쉽기에 풀어써본 것이다. 천지가 시작한다는 것은 아직 사물에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원시상태이다. 만물의 어머니라는 것은 만물에 이름이 생김으로써 비로소 그것들이 구분되고 분간되고 분별되는 개체로 구체화되었다는 것이다.
노자는 '이름'이라는 툴 하나만으로 우주의 역사를 둘로 나누었다. 이름이 생겨나기 전과 이름이 생겨난 후. 왜 그랬을까. 수천년 전의 한 지식인이 이런 광대하고 투철한 사유를 펼쳤다는 것 자체가 놀랍고 그 발상의 도약이 무섭기까지 하다.

우주가 만들어지고 그 속에 생명이 탄생하여 거대한 생태계를 이룬 일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과학적 상식이지만, 노자가 말하는 것은 그런 천지개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인식 속에 들어온 만물에 대해 호칭을 부여하고 개체를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기 전과 후를 나눈다. 아마도 우주의 탄생과 인류의 진화를 '동시에 진행된 것'이라고 이해한 노자시대의 개벽관이 작동한 것이리라. 하지만 인간이 만물에 이름을 붙인 순간부터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는 관점은, 우주 본질을 움직이는 도(道)의 문제를 탐구하는데에는 아주 요긴하다.

노자는 당시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도'가 왜곡되어 진짜 '도'와는 상관없는 것을 가리키는 공허한 것이 되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도에 대한 이 착종이, '호칭'이 생겨나고 '언어'가 만들어지고 개념들이 구성되면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호칭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상태에서 인간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우주의 본질을 상정해 놓는 것이 필요했다. 노자가 머리가 뛰어나고 발상이 유연했다고 내가 입이 마르도록 찬탄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도'를 늘 만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이름이 없던 시절이다. 이름이 생겨난 뒤 그것을 '도'라고 불렀는데 이름과 진짜 '도'가 따로 놀기 시작했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놓고 본격적인 우주론으로 진입한다.



빈섬 이상국(편집부장ㆍ시인)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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