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군복차림에 가짜 칼을 찬 한 무용수가 결연한 표정으로 아리랑축전 연습에 한창이다.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전 국방위 제1위원장이 그려진 대형 그림 앞에서 열심히 잔디를 심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리원 농가의 농부는 손자, 손녀가 수학 숙제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원산의 해변에선 수영객들이 물놀이를 즐긴다. 평양 지하철에선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환한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를 바라본다.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 북한 주민의 일상을 담은 사진이다. 지난 21일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개막한 '북한프로젝트' 전시에 출품된 영국 사진가 닉 댄지거(57)의 작품이다. 댄지거는 지난 2013년 영국문화원의 후원을 받아 북한에서 3주간 체류하며 평양, 남포, 원산, 사리원을 방문해 주민들의 일상을 찍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은 가족과 연인을 사랑하는 똑같은 사람들이었다"며 "굉장히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봤다"고 했다. 원산의 해수욕장에선 주로 부유층들로 보이는 이들이 술과 음식을 권했다.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수화(手話)로 시(詩)를 읊는 모습에 감동했다. 시의 내용은 북한 지도자들에 관한 것이었다. 댄지거는 "인간적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진에 담고 싶다. 클로즈업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도 가까이 다가갈수록 친밀감을 느끼고 감정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댄지거의 북한 사진전은 런던과 홍콩을 거쳐 서울로 왔다. 그는 "이 사진을 북한에서도 전시할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이 사진을 한국에서 전시하고 싶었고 소원을 풀었다. 똑같이 북한에서도 전시할 날이 오길 바란다"며 "개인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이들은 세상의 소금 같은 존재들이자, 실제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다. 선택권과 자유 없는 이들의 인권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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