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의사당 앞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이 광경을 지켜봤다. 백인우월주의 청년 딜런 루프의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참극이 발생한 지 22일 만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즉각 트위터에 환영의 글을 올렸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남부연합기 철거는 우의와 치유의 신호이자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미 지난 7일 흑인교회 희생자 추도식 연설에서 "흑인이든, 백인이든 많은 이들에게 남부연합기는 체계적 억압과 인종적 예속을 떠올리게 한다"며 퇴출의 당위성을 거듭 강조했다.
당연한 지적이다. 그렇지만 남부연합기의 종말을 논하기는 이르다. 미국 남부에선 아직도 그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남부연합기는 54년간이나 '당당하게' 사우스캐롤라이나 의사당 앞뜰을 지키고 있었다. 남부연합기가 들어있는 미시시피주기는 이미 121년째 공식 사용 중이다. 이 지역에선 남부연합기의 뿌리가 상당히 깊이 박혀 있다는 의미다.
흑백차별의 상징으로 비판받는 남부연합기가, 남부군의 지도자들이 지금까지 버젓이 추앙받는 상황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히지만 그동안 적어도 남부에선 이런 상황이 가능할 수 있었던 정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최근 텍사스주에서 불거지고 있는 역사 교과서 논쟁을 보면 그 배경을 일부라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보수파가 장악한 텍사스주 교육위원회는 최근 미국 역사 교과서 수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남북전쟁의 원인을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보다는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지방주의, 각 주별 고유의 권리에 초점을 맞춰 기술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런 시각을 토대로 보면 남북전쟁은 노예제를 둘러싼 선악의 대립이 아닌 당시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해 가던 미국 북부 지역이 강요하는 사회ㆍ경제 시스템에 반발해 남부 고유의 제도와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한 항쟁으로 해석될 여지가 커진다.
실제로 남부연합기와 남부군 잔재 청산 운동이 확산되면서 저항도 만만치 않다. 미 연방하원에선 민주당 주도로 지난 7일 내무부 예산안에 국가가 관리하는 묘지에 남부연합기를 내걸어선 안 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수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이틀 후 공화당 켄 칼버트 의원은 국립묘지에서 남부연합기 게양을 허용해야 한다는 반대 수정안을 제출, 맞불을 놓았다.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 의장이 여론의 비판을 우려해 예산안 표결을 전격 취소해 일단 제동이 걸렸지만 앞으로 이를 둘러싼 전국적, 지역적 공방이 치열해질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네이선 딜 조지아 주지사도 최근 흑인 시민단체 등의 남부군 관련 상징물 전격 퇴출 요구에 대해 "남부군 기념일과 남부군 깃발이 상징하는 선조들의 유산도 잊어서는 안 된다"며 맞서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이 같은 정서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는 흑인교회 추모 연설에서 "남부연합기의 철거는 남부연합군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그들이 싸웠던 대의, 즉 노예제의 대의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남부연합기 퇴출운동은 남부와 남부군의 자부심에 교묘히 똬리를 틀고 있는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을 외과 수술하듯이 도려낼 수 있을 때 진정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근철 기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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