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춘화와 고봉산이 불렀던 옛노래 중에 '잘했군 잘했어'라는 것이 있는데, 노랫말이 부부의 대화형식으로 되어 있는 노래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영감"이라고 부르고 남편은 아내에게 "마누라"라고 부르며 시작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마누라라는 말이 영 감이라는 말과 세트로 쓰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영감(令監)은 조선시대 고관의 별칭이다. 대감(장관급인 판서)보다는 낮지만 종2품 정3품의 당상관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아내라는 말은 '안해'라는 어원을 지닌다. 많은 사람들은 이 의미를 '집안의 해'라든가 '남편 마음 속에 뜬 해'와 같은 멋진 풀이를 하여 여성들을 감동시키고 있지만, 옛사람들이 그렇게 고상한 생각을 한 건 아닌 것 같다. 안은 집안(家內)이나 음양의 음(陰)을 뜻하는 말이고, 뒤에 붙은 '해'는 소유의 의미하는 '의 것'을 의미한다. 처용가에 나오는 '둘은 내 해언만 둘은 뉘 해엇고' 귀절의 그 '해'인 셈이다. 안애나 안에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 때는 장소를 의미하는 '에'가 뒤에 붙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아내는 '지금 집에 붙어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리 감동적인 의미는 아니다. 아내가 집에 붙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한자어 편안할 안(安)자를 봐도 드러난다. 여자가 처마 밑에 붙어있어야 편안해진다는 얘기다. 집사람이나 안사람이란 말은 아내라는 뜻과 거의 일치하는 말이다. 내자(內子)라는 말도 한 때 썼는데, 이 말은 안(內)+애(子, '에'를 뜻하는 표현)의 정확한 번역이다.
부인(婦人)이란 말은 결혼한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규정한 족쇄같은 말이다. 여기엔 한 남자의 아내라는 뜻이 없다.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된 사람이다. 자기 아내를 '내 아내'라고 일컫지 않고 '어머니의 며느리'라고 일컫는 그 언어관행은 여기서 나온 무의식이다. 부인이란 말은, 결혼한 여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를 천명하고 있다. 현모양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효부(孝婦)였다. 아내는 부모를 에둘러 다시 내려오는 며느리였다. 부인을 높이는 말중에 부인(夫人)이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퀴리부인같은 분에게 그런 호칭을 쓴다고 배웠다. 그런데 이 말은 '남편의 사람'이란 뜻인가.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저 부(夫)는 대부(大夫) 벼슬에 오른 자를 말한다. 그러니 부인(夫人)은 존귀한 사람의 처를 말한다.
이상국 편집부장·디지털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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