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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무대책 경제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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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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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민들의 최근 경제심리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공포'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개발시대의 '도전정신'은 공포감 뒤에 잔뜩 웅크린 채 고개를 떨구고 있다.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 살고 있는 것 자체가 두렵다.

경기침체 때문이라고? 흔히 'D의 공포'라는 저물가와 저성장이 어이지는 디플레이션으로 우리 경제가 올무에 걸렸다고? 아니다. 우리 경제는 최근의 3%대 성장에도 못 미치는 훨씬 더 심각한 저성장에 빠진 시기가 있었다.
외환위기에 빠졌던 1998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9%였다. 금융위기에 휩싸였던 2008년에는 2.3%, 그 이듬해인 2009년에는 0.3%였다. 절대수치뿐 아니라 성장률이 반토막 난 적도 드물지 않았다. 올림픽 특수가 있었던 1988년 10.6%였던 성장률은 1989년 6.7%로 급락했고 2000년 8.5%로 잘 나가던 성장률은 이듬해 3.8%로 고꾸라지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 어느 때보다 '살 길이 막막하다'며 두려움에 빠져 전전긍긍하고 있을까. 지금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공포는 '무대책(無對策) 증후군' 때문이다.

우선 별짓을 다해봐도 일자리 찾기가 힘들다. 특히 경제활동인구의 주축인 청년들의 실업률이 올 들어 10%를 넘어서 1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직 청년들과 그 부모에게 눈높이를 낮추고 해외로 진출하라는 정치권과 대통령의 입은 '열정페이'만큼이나 공분을 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 정도 대책을 발표할 정도면 사실상 국내에서 양질의 일자리창출은 불가능하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 월급을 받으며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봉급쟁이들 역시 100세 시대에 생계대책이 없다. 직장인이 예상하는 평균 퇴직 연령은 52세다. 말 그대로 '희망'이지만, 이대로 된다고 한들 국민연금 수령시기인 65세까지는 13년간 소득이 없는 '은퇴크레바스'에 빠진다.

그래서 회사에서 밀려나면 불가피하게 하는 선택이 자영업 창업이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비율은 이미 2012년 기준 28.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4위다. 우리나라보다 높은 나라는 터키와 그리스, 멕시코 정도다. 더욱이 대부분이 영세업자여서 투자에 따른 자본소득자가 아니라 사실상 자기 인건비 챙기기에도 바쁜 노동소득자에 해당한다.

인건비라도 건지면 다행이다. 금융감독원과 국세청, KB국민카드 등에 따르면 2002∼2011년 KB국민카드 가맹점 204만개 중 최종생존율은 24.6%였다. 10년 동안 100명이 창업해 75명이 휴업했거나 폐업했다. 이들의 재기는 낙타 바늘구멍 지나가기만큼 힘들다. 그 결과가 엄청난 노년층 빈곤율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0년 기준 한국의 노년층 상대적 빈곤율이 47.2%로 OECD 중 가장 높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주식시장이 2100선을 넘고 부동산 거래가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 자산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정부는 기대하는 모양이다. 주가가 3000을 가고 부동산 가격이 다시 뛰기 시작한 들 '있는 자들의 잔치'에 그칠 공산이 크다. 자산 버블로 내수라도 늘면 다행이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무대책 경제 속에 나름의 대책을 세우겠다며 지갑을 쉽게 열지 못한다.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20년의 데자뷔다.

경제에 생기를 돌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국민들에게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최소한 인간적인 삶의 영위가 가능한 노후, 실패 후 재기할 수 있는 경제시스템, 해고 후 재취업의 가능성 제고 등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하는 정책이 절실하다. 국민들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만 있다면 증세도 나쁜 방법은 아닐 게다.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대담할 수 있다(Secure People Dare)'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슬로건이다. 세금으로 적자를 보전한 연금으로 노후안전지대에 들어선, 또는 들어설 공무원과 교사, 군인 등을 제외하고 대다수 국민은 대담해질 수 없는 한국경제의 현실에 식은땀이 난다.



박성호 정치경제부장 vicman120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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